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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주주권 무시하는 ‘속도전 株總’
10대 재벌그룹 계열사 대부분이 올해도 약속한 듯 3월 14일 오전 9시를 기해 일제히 정기 주주총회를 열었다. 삼성그룹 17개사, 현대차그룹 8개사, LG그룹 9개사 주총이 동시다발로 진행됐다. 10대 그룹 상장사 35곳 중 31곳이 주총을 치렀다. 이날 주총을 연 상장 기업은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 코넥스를 포함해 모두 116개나 된다.

특정그룹의 계열사들이 주말인 금요일을 택해 한날한시에 속도전으로 해치우는 게 우리네 주총 풍경이다. 기업 입장에선 주총일이 오너 2, 3세의 등기이사 선임 등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D-데이다. 그러니 군사작전 치르듯 주총장을 장악하고 안건을 속전속결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는 소액주주들의 발언권과 의결권을 무력화하는 사실상의 담합행위다.

주총을 같은 날 열면 여러 기업의 주식을 가진 주주라도 주총 참석은 한 곳밖에 할 수 없다. 골치 아픈 소액주주나 외부 대주주들의 참석을 막고 대주주와 경영진 뜻대로 몰고갈 수 있다. 소액 주주뿐만 아니라 기관투자자 차단효과도 크다. 기관은 주총 2주 전에 의안을 받아 5일 전까지 의결권 행사 내용을 공시해야 한다. 몰아치기 주총에 걸리면 기관은 수많은 의안을 분석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주총이 이렇게 몰려 있는 상황에서도 주주가 의결권을 행사하려면 전자투표제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긴 하다. 그러나 이마저도 도입한 지 4년이 지났지만 제대로 시행하는 곳을 찾기 어렵다. 의무가 아닌 권유사항이라서 기업들이 외면하기 때문이다. 현재 의무화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개정안 처리를 서둘러야 한다.

경직된 주총문화도 바꿔야 한다. 딱딱한 분위기 속에서 최고경영진, 이사회 임원들끼리 일사천리로 주요 안건을 마무리 짓는 게 한국식 주총의 일반적 모습이다. 지난 2월 주총을 개최한 기업 대부분은 30분 만에 안건을 처리하고 파했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의 지난해 주총 역시 1시간 남짓 만에 끝났다.

최근 일부 기업 중심으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긴 하다. 풀무원은 경영진과 주주들이 토크쇼처럼 대화하는 형식의 ‘열린 주총’을 7년째 이어오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주총이 끝난 후 주주들을 대상으로 팸투어(공장견학)와 기술설명회를 진행하며 회사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이런 모델들을 잘 발전시켜 축제처럼 즐기는 주총문화를 만들 때가 됐다. 미국의 워런 버핏 회장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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