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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스포츠 칼럼 - 박영상> 언론자유와 방송법
우리 헌법은 건국 이래 줄기차게 언론 자유를 보장해 오고 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언론 자유의 범위나 한계는 그때그때 정치 세력들 간의 다툼, 타협, 여론의 흐름 그리고 사회적인 쟁점에 따라 좁아졌다 넓어졌다를 반복해 오고 있다. 언론 관련법이 손질될 때마다 언론의 사회 책임이니 공공성의 확충 등이 잣대로 등장해 왔다.

언론자유나 표현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지탱하는 기둥이고 일구고 가꾸어야 할 소중한 가치라는 데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국민 개개인이 두려움이나 외부의 간섭 없이 자기 생각, 주장을 표현할 때 그 국가 공동체는 탄탄하게 만들어진다. 또 언론 매체는 사회상을 반영하거나 흩어져 있는 개인들의 의견을 수집 증폭하여 전달할 때 국가는 동력을 얻게 마련이다. 이런 이유로 모든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표현의 자유를 소중한 자산으로 치부하여 우월적인 지위로 헌법에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언론 자유의 개념이 말끔하게 정리 정돈된 것은 아니다. 수세기 동안 논쟁과 논란을 거듭하고 있지만 모두가 동의하는 영역이 구축된 것은 아니다. 자주권이나 자율권이 충분히 보장되고 무엇보다 사전 억제(prior restraints)가 없어야 한다는 느슨한 기준이 마련되어 있을 뿐이다. 바꾸어 말하면 아무런 제약이나 제한 없이 메시지를 만들어 보내는 것이 첫째이고 품격 있는 매체로 이행하는 것이 그다음이다. 품격을 구실로 사전에 간섭을 하는 것은 언론 자유의 기초를 뒤흔드는 일이다.

지난달 국회의 방송통신을 담당하는 상임위가 모든 방송사들이 노사동수의 편성위원회를 의무적으로 구성 운영토록 방송법을 개정하기로 합의했다. 편성위원회는 방송할 콘텐츠를 결정하는 것은 물론 편성 책임자의 추천, 임명, 평가를 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방송의 생명인 편성을 규제하고 족쇄를 채울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셈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정치적인 상황과 위헌 시비 때문에 이 법은 해당 상임위원회도, 본회의도 통과되지 못하고 엉거주춤 정지해 있다. 정지되어 있는 법안에 대해 걱정을 하는 것은 우리 정치권의 과거 행적 때문이다. 찰나적인 이익이나 파당적인 욕심 때문에 법의 이름으로 언론을 옥죄거나 족쇄를 채우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회 책임이나 공공성 확충이라는 불분명한 기준을 내세워 자기들 입맛에 맞는 행동을 강요해 왔던 점을 고려할 때 또다시 악습이 되풀이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미국 수정 헌법 1조는 연방의회는 언론 자유를 제한하는 어떤 법도 만들지 못하도록 못 박고 있다. 200년이 훨씬 넘는 18세기에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헌법에 안전정치를 해놓은 혜안이 놀랍고 부럽기만 하다. 언론이 제 몫을 다하기 위해서는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첫째이고 자기 임부에 충실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 틀림없다. 돕되 간섭은 하지 않아야 한다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 넓은 식견과 밝은 통찰력을 지닌 정치인들을 보게 될까?

박영상 한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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