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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 문호진> 정도전이 안철수에게
벌써 2년 반이 지났군요. 후배님이 새 정치의 메시아로 부름받고 세상에 나온 게. 그 무렵 ‘안철수의 생각’이란 책을 접하고 후배님에 애정을 갖게 됐지요. 무엇보다 민본주의 철학이 가슴에 닿았습니다. 600년 전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민생을 중심에 놓는 새 세상을 열어야겠다고 결심한 곳은 나주 유배지였지요. 권문세가들의 곳간은 터질 듯한데 백성들은 송곳 꽂을 땅조차 없을 정도로 비참한 현실 앞에 절망했지요. 그 절망이 분노를, 분노가 열정을, 열정이 힘을, 힘이 혁명을 낳아 마침내 고려라는 낡은 틀을 부수고 조선을 열 수 있었지요. 후배님은 지금 어느 지점에 서 있을까요.

얼마 전 민주당과의 합당은 대단했소. 달랑 의원수 2석의 신당으로 60년 전통에 126석을 가진 민주당과 동등한 자격으로 통합을 했으니 말이오. 앞서 “야권 연대는 없다”고 외쳐놓고 달포도 안 돼 말을 뒤집어야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소. ‘새 정치의 철수(撤收)’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들어야 했으니….

그러나 정말 잘한 결단이었소. 대업은 결코 혼자 이룰 소 없소. 내가 권문세가의 수장인, ‘정치9단’ 이인임과 철옹성 같은 고려 장수 최영을 어찌 쓰러뜨렸는지 떠올려 보시오. 힘없는 자의 용기만큼 공허한 것은 없지요. 내가 딱 그랬지요. 열정은 충만한데 세상을 변화시킬 아무런 힘은 없고…. 후배님이 새정치연합이라는 깃발을 들고 지방선거에 출사표를 던졌으나 사람도, 돈도, 조직도 없어 낙담한 거나 매 한가지지요.

문신인 내가 무신 이성계와 그의 정예부대와 손잡은 것은 대업을 도모할 힘이 필요했기 때문이오. 혹자는 나를 조선 태조 이성계의 책사라고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요. 고조 유방이 장자방(장량)을 쓴 게 아니고 장자방이 유방을 써 한나라를 개창한 것처럼 내가 변방 장수 이성계를 불러내 조선을 건국한 것이오.

후배님도 나처럼 지략이 뛰어난 ‘킹메이커’ 김한길과 그의 민주당 조직을 등에 업었으니 이제 대업을 이룰 힘이 생긴 것이오. 김한길 대표는 김대중ㆍ노무현 두 대통령을 만든 일등공신 아니겠소. 김한길의 정치적 스승인 DJ는 정치인의 덕목으로 ‘서생적(書生的) 문제의식과 상인적(商人的) 현실감각’을 강조했다지요. 이제 안 선생이 상인적 현실감각 쪽으로 한 발짝 뗀 것 같아 흐뭇하오. 정치인이 대업을 이루려면 신의 한 수가 필요한 법이오. DJ는 20여년 전 DJP 연합을 성사시켰고, 그의 숙명의 라이벌인 YS는 그보다 앞서 삼당합당을 통해 대권을 잡을 수 있었지요. YS는 이때 “호랑이를 잡고자 호랑이 굴에 들어가겠다”는 말을 남겼지요. 힘이 부족할 때는 적과의 동침도 마다하지 않아야 합니다. 바람을 쌓은 후에야 원하는 곳으로 날아갈 수 있는 법이니까요.

세상 사람들이 조선의 대표적 책사로 흔히 나와 한명회를 꼽습니다. 내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입니다. 한명회는 기껏해야 수양대군을 용상에 앉히는 데 그쳤습니다. 그에게는 제도와 사상에 대한 고민이 없었지요. 반면에 나는 법ㆍ제도ㆍ종교ㆍ국방ㆍ도읍지ㆍ조세ㆍ교육 등 가장 사소한 것에서 가장 거대한 것에 이르기까지 새 세상의 비전과 방안을 제시했소. 나라의 잘잘못을 평하는 훈수꾼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백성의 눈물을 닦아주는 나라를 만들려면 이상론에 그쳐선 안 되고 구체적 혁신방안을 내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대업은 영광이 아니라 고난의 십자가입니다. 굳이 이 길을 가겠다고 나섰으니 꼭 성공하길 기원합니다. 

문호진 논설위원 mh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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