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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송팔대가의 글쓰기는 왜 위대한 고전이 됐는가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중국의 당송시대 이전 정통문학은 변려문이었다. 사륙변려체로도 불리는 변려문은 봉건 지배층의 문체로, 반드시 대구(對句)를 이뤄야 했으며 미사여구를 다듬고 전례(前例)와 고사(故事)를 많이 사용해 형식미와 장식성을 중시한 묘당(廟堂ㆍ조정과 신료들의 글) 문학이었다. 고상하고 경직된 이런 문장은 통치계급의 공덕을 과장하고 공허한 아부를 일삼는 데 편리할 뿐 사실을 분명히 반영하지 못하고 사상과 감정을 충분히 표현하기에도 어려웠다.

당나라의 한유부터 송나라의 소철까지 이른바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는 화려하고 난삽했던 문풍을 통속적이고 질박한 자연스러운 어체로 이끌었다. ‘문장 혁신(중국문학사)’은 당송팔대가의 삶과 문학 그리고 그들의 사상과 글쓰기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며 당시의 혁신적인 글쓰기를 조명한다.

고문운동을 창도한 당나라의 한유와 유종원은 모두 명문가 출신이었으나 관직에서 좌천된 이후 사회현실에 눈을 뜬 당대의 지식인이자 문장가였다. 백성에 해악을 끼친 고위관리와 불교를 반대한 이유로 한직으로 밀려난 한유의 사상은 인민의 질고에 대한 동정에서 시작했다. 그는 백성이 착취당하는 원인으로 환관의 전횡과 번진의 할거, 불가와 도가의 폐단을 들고 이를 비판했다. 이러한 진보적인 정치관은 그대로 문학사상에도 영향을 미쳐 산문창작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었다.

구양수는 형식과 기교에 치중한 송대 초기의 산문 풍조에 반발해 통속적 어투와 일상어를 사용함으로써 산문의 외연을 넓히는 데 힘썼다. 구양수의 제자 증공은 주도면밀한 조사와 자세한 분석을 바탕으로 풍성한 서사가 구체적인 기록으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법을 통해 관료와 지주의 이익을 제한하고 민생을 돌보고자 했던 진보적 정치가 왕안석은 문예란 세상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순 또한 명백하고 시원스러운 문장으로 당시 현실 문제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논설문을 주로 남겼다.

소식과 소철은 소순의 아들이다. 특히 소동파로 널리 알려져 있는 소식은 문장가들의 문장가로 시와 산문, 사부와 서화에서 두루 그 시대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 그는 자연스러운 문장을 으뜸으로 쳤고, 심오해서 어려운 것은 반대했다. 심오해서 어려운 것은 현학적인 표현이 아니라 말하려는 것을 잘 모르기 때문에 빚어지는 결과라고 본 것이다.

저자는 당송팔대가 8인의 생애와 사상을 요약하고 그들의 작품이 거둔 예술적 성취를 다양한 작품 분석을 통해 제시한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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