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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근대 자본주의, 어떻게 이 땅에 뿌리내렸나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민영휘(1852~1935)는 1911년 일본 시사신보(時事新報)가 조사 발표한 50만 원 이상 자산가 중 하나로 거론된다. 그는 1917년께엔 총 재산 500~600만 원으로 ‘반도 유일의 부호’라고 불릴 정도로 상당한 부를 축적하고 있었다. 민영휘의 재산은 그가 평안도관찰사, 선혜청당상 등 고위 관리로 재직 당시 백성들의 재산을 수탈해 이룩한 것이었다. 그는 이 같은 재산을 기초로 금융권에 진출해 한일은행장에 오르는 등 기업가로 변신했다.

초기 한국 자본주의 역사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내재적 발전론에 밀려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뤄져왔다. ‘근대 한국의 자본가들(푸른역사)’은 근대 한국 자본가의 계보와 유형, 성공과 실패의 이면을 들여다보며 초기 한국 자본주의에 대한 구명을 시도한다. 기존 학계의 연구가 해방기 무렵의 자본주의에 집중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100년 전을 주목한 이 책의 시도는 흥미롭다.

이 책의 저자 오미일은 ‘한국근대자본가연구’ 등의 저작을 통해 한국 자본주의 연구에 천착해왔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근대 자본주의가 어떤 과정을 통해 이 땅에 정착돼 뿌리내릴 수 있었는지, 자본주의적 경제활동을 벌인 인물이 누가 있는지 다양한 자본가 군상을 사회적 신분ㆍ배경ㆍ자본 축적 토대 및 경로 등 몇 가지 기준으로 분류해 각 유형별 대표 자본가들을 분석한다.

저자에 따르면 개항 후 초기 한국 자본주의는 관료 출신 혹은 어용상인층 등에 의해 주도됐다. 이들은 권력을 등에 업고 수탈을 통해 자본을 축적하거나 혹은 정부 관아를 상대로 한 조달업과 수세청부, 정부의 각종 근대화 사업에 참여함으로써 자본 축적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러한 권력과의 결탁에 의한 자본 축적은 이후 일제강점기의 산업ㆍ금융 정책에 동승하는 방식으로 연장됨으로써 강한 예속성을 내재할 수밖에 없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민족경제권 건설을 위해 노력한 안희제와 민족기업을 설립ㆍ운영했던 이승훈의 경제 활동은 한국 자본주의의 또 다른 경로를 보여준다. 이들은 국내 수요를 감안해 대량생산체제를 지향했고, 또한 일본인 자본에 대항하기 위해 소자본의 열세를 소액 주주 모집과 주식회사 형태를 통해 극복하려 했다. 이들은 기술과 자본 부족 등으로 사업체를 오래 경영하지는 못했다. 저자는 이들의 노력을 협동조합운동이나 독립운동과 같은 사회정치적 활동과 함께 무거운 의미로 기억해야 할 유산이라고 평가한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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