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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로 호출된 너와 나의 추억들…
동갑내기 부부작가 뮌 ‘기억극장’ 展
현란한 전광판이 명멸하는 뉴욕 브로드웨이의 타임스스퀘어 광장. 뉴요커는 물론,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곳에는 ‘뮤지컬의 아버지’라 불리는 작곡가 조지 M 코헨(1878~1942)의 동상이 서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동상을 눈여겨보지 않는다. 모두가 전광판만 응시할 뿐이다.

동갑내기 부부작가 뮌(Mioon: 김민선+최문선)은 이에 주목했다. 살아 있을 당시 최고의 명망가였기에 브로드웨이 한복판에 동상이 세워졌지만 이제는 천덕꾸러기가 된 동상의 뒷모습을 영상으로 느리게 잡았다. 그리곤 영상 속 동상이 어느 순간 숨을 쉬도록 살짝 비틀었다. 딱딱하기 이를 데 없는 동상이 심호흡을 하는 모습은 낯설고 진기하다. 앞모습이 아닌 뒷모습을 잡은 것도 특이하다.

작가는 “코헨은 타임스스퀘어를 오가는 이들이 그의 ‘숨결’을 계속 느껴 주길 바라겠지만 첨단 테크놀로지가 내뿜는 빛과 에너지 때문에 누구도 관심을 갖질 않는다. 뮤지컬 본산지의 집단정체성을 보여주는 ‘문화적 기억’(동상)은 이렇듯 망각되는 과정을 담았다”고 밝혔다. 

다섯 개의 대형 캐비닛에 수백개의 오브제를 설치하고, 모터를 달아 움직이게 한 뮌(Minn)의 신작 ‘오디토리엄’. 인간의 기억을 극장처럼 구현한 작업이다. [사진제공=코리아나미술관]

서울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수학한 김민선ㆍ최문선 커플은 ‘뮌’이라는 이름 아래 독일, 프랑스, 남아공 등지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이 부부가 독일에서 귀국한 후 처음으로 국내 개인전을 갖는다. 서울 신사동 코리아나미술관(관장 유승희) 초대로 개막된 전시의 타이틀은 ‘기억극장’. ‘기억’이라는 메커니즘, 기억의 효과를 ‘극장’이라는 시각적 프레임에 담아낸 영상 및 설치 작품 11점이 출품됐다. 이로써 개인의 기억, 집단의 기억은 작가에 의해 예술로 호출돼 미술관에 넘실대고 있다.

본래 개인의 기억은 그것이 아무리 또렷이 저장됐다 해도 불완전하고 유동적이다. 세월에 의해 망각되기도 하고 변형되기 때문이다. 사회 및 집단의 기억 또한 마찬가지다.

이에 뮌은 ‘기억의 이전과 이후’를 중첩되는 잔상 효과로 표출했는가 하면, 내면화된 우리의 사회적 기억을 재점검했다. 또 개인의 기억이 세대를 거쳐 오붓한 취향으로 쌓여가는 ‘가문의 기억’을 오픈 스테이지 형식으로 구현하기도 했다. 반면에 트라우마에 해당되는 억압된 기억은 시니컬한 영상 및 설치 작업으로 압축했다.

이들 작업 중 가장 관심을 모으는 작업은 5개의 대형 캐비닛이 반원형의 극장구조를 이루는 ‘오디토리엄’이다. 개인과 집단의 기억을 수백여 개의 그림자를 통해 입체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작품은 뽀얀 아크릴판 뒤로 비치는 기묘한 그림자, 벽면에 투영된 그림자가 서로 어우러지며 인간 기억의 구조를 환기시킨다. 기억의 중첩과 치환, 분절을 일깨우는 이 작품은 뒷면이 더 흥미롭다.

캐비닛 뒤로 발길을 옮기면 수백여 개의 크고 작은 오브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선반에 놓인 수레, 자유의 여신상, 꽃, 비행기, 탱크, 축구 골대, 사진들은 무수하게 집적된 개인적·사회적 기억을 이어주기도 하고, 분리시키기도 하면서 기억의 비정형성을 드러낸다. 뮌은 “작품의 앞보다 뒤를 보여주고 싶었다. 매끈한 캐비닛 뒤에 자리 잡은 기억이 품은 ‘날 것’에 주목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5월 31일까지. 02)547-9177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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