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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5억 황제 노역, 향판제도에 문제는 없나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황제 노역’ 논란이 일파만파다. 급기야 법관의 재량권 범위와 지역법관(향판ㆍ鄕判)제도 개선 문제로 비화되는 모습이다. 그럴 만도 하다. 허 전 회장의 노역 일당은 5억원이다. 지난 22일(토요일) 밤에 입감한 허 전 회장은 주말을 보내는 하루 사이 10억원을 탕감받았다. 게다가 그가 하는 노역이라는 게 종이 쇼핑백에 풀칠하기다. 이렇게 49일 만 때우면 254억원이 탕감된다니 기가 막힐 뿐이다. 5만~10만원에 불과한 일반인의 노역 일당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물론 노역 일당을 정하는 것은 판사의 재량이다. 재판의 독립성과 탄력적인 법적용을 위해 판사에게 재량권은 필요하다. 하지만 일반의 상식에 부합해야 한다. 재량권은 판사의 개인 권한이 아니라 국민이 위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판결과 집행과정을 보면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더욱이 판결을 내린 판사는 광주 지역 향판이다. 대주건설은 이 지역에 기반을 둔 대기업이었다. 재판부가 해당 기업 회장에게 특혜를 준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일당 5억원 노역 판결 과정이다. 검찰은 2007년 수백억원의 법인세 포탈과 공금 횡령 혐의 등으로 허 전 회장을 기소하고 징역 5년, 벌금 1000억원을 구형했다. 이에 1심인 광주지법은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벌금 508억원을 선고했다. 법관 재량으로 형을 덜어주는 ‘작량 감경’을 적용, 벌금을 반으로 줄여줬다는 것이다. 그러나 2심인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벌금을 다시 반으로 더 깎았다. 피고가 자수를 한 것을 참작했다는 게 그 이유다. 벌금을 줄인 것만 해도 납득이 가지 않지만 더 의아한 것은 노역장 유치 기간 환산이다. 법조계에선 아무리 후하게 쳐도 허 전 회장의 노역 기간과 일당은 3년에 3000만원을 넘길 수 없다고 한다. 검찰이 항소와 상고를 포기한 것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누가 보더라도 봐주기 판결이란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향판제도부터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향판을 둘러싼 잡음은 툭하면 불거지고 있다. 오랜기간 한 곳에서 근무하는 향판제도는 판사들이 지역 사정을 속속들이 잘 알아 판결을 내리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대법원이 2004년 제도를 도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지역 법조계는 물론 기업 및 토호세력과의 유착관계를 형성할 소지가 높다는 폐단도 만만치 않다. 실제 그런 사례가 적지 않았다. 개인적 문제라지만 제도적 결함도 크다. 법원의 신뢰와 권위가 더 이상 허물어져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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