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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광장 - 이동연> 인문학 대중화, 많이 당황하셨어요?
정부서 기업 · 시민사회까지
연이어 인문학 중흥 외치지만…
학술 · 출판계선 고사직전의 역설
인문학의 비판정신부터 복원을


인문학이 요즘보다 더 많이 각광받은 적이 과연 있었을까? 국가와 기업, 시민사회에 이르기까지 인문학은 현재 최고의 상한가를 기록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이후 발표한 국정과제에서 인문정신문화 진흥은 140대 국정과제 중의 하나로 선정되었다. 전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고, 국민 행복지수가 바닥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입에서 인문정신문화가 대안이라고 나왔으니, 인문학이 갑자기 모든 학문의 으뜸이 된 듯하다.

곧바로 청와대 직속 문화융성위원회 산하에 인문정신문화진흥특별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조만간 이 위원회에서 구체적인 관련 진흥계획을 발표한다고 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올 초에 ‘인문정신문화과’를 새로 신설하여 도서관, 박물관 등에서 인문학 강좌 등을 열고, 한국의 정신문화의 토대를 든든히 할 국학 연구에 매진하겠다는 구상이다. 이에 질세라 교육부 역시 인문학 대중화 사업에 석학인문강화 사업 등을 필두로 60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기업도 장난이 아니다. 대기업 경영진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동양의 고전읽기에 매진해왔다. 최근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은 인문학 릴레이 강연회를 개최하는 등 인문학 진흥에 매년 2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교보문고와 대산문화재단은 4월부터 동양학을 주제로 매주 ‘교보인문학석강’을 개최힌디. 삼성그룹은 인재채용에서 인문학 지식이 높은 지원자를 우선적으로 채용하겠다는 인사방침을 발표한 바 있다. 인문계열 전공자들이 그동안 대기업 인재 채용에서 다소 홀대 당한 걸 떠올리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인문학을 내걸고 연구와 강연 등을 펼쳐온 시민모임 역시 인문학 대중화에 앞장섰다. 슈유너머, 다중지성정원, 문지사이 등 자율적인 학문공동체 집단들은 인문학 관련 강좌들을 정기적으로 개설하고 있다. 여기서 한발 나아가 대학의 상아탑을 벗어나 인문전공자들이 다양한 사회구성원과 만나는 인문학협동조합이 출범하기도 했다.

인문학 대중화를 위해 국가, 기업, 시민사회가 일심동체가 되었으니, 인문학 혹은 인문학자들은 지금 행복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지금 인문학과 인문학자들은 그다지 행복하지는 않은 것 같다. 인문학의 가장 중요한 학문적 토대가 되어야 할 대학은 연일 인문학과 구조조정에 몸살을 앓고 있다. 인문학 열풍으로 극히 소수의 인문학자들이 대중적인 스타의 반열에 오르긴 했지만, 출판시장에서 인문학의 매출은 반에 반토막이 난지 오래다. 대학에서 인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자들이 안정적인 생활을 한다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그나마 한국연구재단의 인문한국 지원 사업이 인문학 전공자들에게는 약간의 숨통을 터 주긴 했지만, 인문학 전공 후속 세대들이 안정적으로 연구를 할 수 있는 토대 마련은 여전히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가와 기업이 인문학 대중화를 위해 발 벗고 나섰는데, 정작 대학과 학술출판 진영에서는 인문학이 고사 직전인 이 역설적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필자가 보기에 그 역설은 인문학 대중화가 오히려 인문학 위기를 심화시킨 탓 때문이다. 인문학은 태생적으로 인간의 비판과 성찰이라는 기본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인문정신문화 사업은 비판을 교양으로, 성찰을 힐링으로 대체하여 본래 인문학의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기업이 인문학에 관심을 갖는 것도 구성원과 소비자에 대한 깊이있는 접근보다는 단순 경영 논리에 불과한 측면이 있다. 거리의 인문학은 대학의 인문학을 무력화하고, 심지어는 그것을 정당화한다. 대학, 학술, 출판의 선순환적 연계 없는 인문학 대중화는 단지 인문학의 사망선고를 조금 지연시키는 인공호흡기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니 인문학 대중화가 아닌 인문학 자체의 비판정신을 복원하는 것이 우선과제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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