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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광장 - 정용덕 교수> 한국은 아직 근대화 되지 않았다
정용덕 서울대 명예교수, 행정학

‘세월호’ 침몰 사건이 발생한 직후 로스엔젤레스(LA)에 거주하는 케이든(Caiden) 교수 부부가 “국민적 비극(National Tragedy)”이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보내왔다. “많은 젊은이들을 태운 여객선 침몰 소식에 접해 한국 국민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는 내용이다. 이 부부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행정학을 강의하면서, ‘행정개혁‘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창설한 비교행정의 권위자들이다. 필자와 40년 가까이 의견을 주고받을 만큼 한국의 발전에도 관심이 많다. “결국에는 구출될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부끄럽게도 이번 인재(human caused disaster)를 통해 한국은 아직 근대화 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회신을 보냈다.

공ㆍ사 조직의 운영에서 근대화란 합리성과 법에 의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합리성을 높이기 위해 세세한 절차와 행동 양식을 사전에 마련해 놓고, 그에 따라 조직이 운영되도록 하는 것이다. 개개인은 사전에 부여된 각자의 임무를 사적 감정이나 이해관계 없이 철저하게 책임지고 수행해야 한다. 이 원리에 의거하는 관료제는 카리스마나 관습에 의거하던 전(前)근대적인 방식과는 비교될 수없는, 인류가 창안해 낸 최상의 관리방식으로 칭송된다. 20세기 말 이후 추진되고 있는 탈관료제 개혁은 일단 근대 관료제가 정립되고, 그러기에 행정에 대한 국민 신뢰가 확립된 후에, 그것의 경직성을 보완하기 위한 조치들일 뿐이다.

개인이나 조직 혹은 국가의 진면목은 특히 위기 상황에서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이번 사건의 발생과 구조작업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아직도 관료제 정신이 정립되어 있지 않음을 확인하게 된다. 우선, 운항 관련 규정과 매뉴얼이 마련되어 있었음에도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승선자 수를 파악하지 않은 채, 선적 화물을 제대로 묶지 않은 채, 선장은 제 자리를 지키지 않은 채, 낡은 것도 모자라 무리하게 확장까지 한 여객선을 구명장치와 심지어 조타기까지 정비하지 않은 채, 시간 절약을 위해 굳이 험로를 선택해 운항했단다.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 대부분이 기본적인 직업윤리조차 외면한 채 먼저 탈출했다는 소식에는 그저 망연자실할 뿐이다.

행정관청의 부실 감독 또한 공공부문의 전근대성을 보여준다. 여객선 운항처럼 위험이 내재된 사안은 어느 나라던 탈규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자율규제 방식을 활성화하는 등의 개혁이 가능할 뿐이다. 2000여 여객사들의 운영을 자체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조직으로 한국해운조합이 있다.

이 정점조직(peak organization)의 역대 간부들이 감독관청 출신 전직 공직자들이란다. 이들이 감독관청의 정책기조를 효과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인지, 재취업 기회를 유지하기 위해 로비스트 역할을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한국에서 자율규제 방식의 개혁 가능성을 검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안전 불감증’은 비교적 안전한 지형적 요인에서 비롯되었다는 학설이 있다. 좋은 자연을 누리면서 기껏 인재를 통해 학습효과를 쌓아가기에는 그 때마다 스러지는 인명들이 너무 아깝고 비통스럽다. 선진국 사람들의 눈에는 낯설기 만 할 정부와 구조팀에 대한 가족들의 거친 항의는 정부의 전근대성에 대한 오랜 불신에서 비롯되는 한국적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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