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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슬픔의 바다에서 피어난 의로운 사람들
진도 팽목항에서 가장 처연한 장면은 바다를 바라보고 하염없이 바위처럼 앉아있는 ‘엄마’의 모습이다. 그대로 두면 망부석처럼 굳어질 듯하다. 한 자원봉사자가 다가가 찬 어깨를 따스하게 감싸며 일으켜 세운다. 서울에서 피트니스센터 강사로 일하는 유미(여·30)씨다. 그는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듣고 지난 18일 홀로 팽목항으로 내려왔다. 이후 그는 실종자 가족 김정혜(여·44) 씨 곁을 지키며 먹고, 자고, 씻는 것은 물론 마음까지 어루만져 주고 있다. 김씨는 “허망하게 아들을 잃은 바다에서 새로운 딸을 얻었다”고 했다. 꽃봉오리 같은 어린 생명들을 삼킨 진도 앞바다, 그 거대한 슬픔의 바다에서 한줄기 빛이 된 사람들. 자원봉사자들이다. 직접 물속에 뛰어드는 잠수사부터 주부 대학생 직장인 등 온 국민이 참여하고 있다. 진도실내체육관과 팽목항 두 곳의 모든 일상은 이들의 힘으로 움직인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라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무명의 헌신’이 실종자 가족들에게 버팀목이 되고 있다.

생업을 접고 전국에서 달려온 민간 잠수사들은 밤낮없이 차갑고 탁한 바다로 뛰어들고 있다. 천안함의 영웅 고 한준호 준위처럼 한계를 넘나드는 사투를 벌이며 실종자를 찾아내 가족 품에 안긴다. 이들 가운데 10여명은 마비 등 잠수병 증세로 감압치료를 받고 있다. 변변히 밥 챙겨 먹을 겨를도 없이 쪽잠 자면서도 내 자식 같은 바닷속 아이들이 눈에 밟혀 사력을 다한다.

다른 자원봉사자들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찾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음식점 하던 이는 국밥을 끓이고, 주부들은 설거지하고 화장실을 청소한다. 시신발견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가족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도 이들의 몫이다. 안산시 개인택시 기사들은 희생자들이 안치된 장례식장을 오가는 유가족을 위해 택시 200대를 무료로 순환 투입하며 편의를 돌보고 있다. 때로는 안산에서 진도까지 약 340㎞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달린다.

유족들의 슬픔을 다독이는 온정은 안산에서도 피어나고 있다. ‘단원고 우리 승묵이를 지켜주세요’. 월피동 삼일마트 셔터문에 쓰여진 이 글귀 위로 승묵이의 생환을 바라는 이들의 간절한 마음을 담은 소망편지가 가득하다. 지난 23일 설치된 안산올림픽기념관 분향소에는 밤늦도록 일반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져 벌써 5만여명이 다녀갔다. 이들은 “너희들 다 구하고 나도 따라가겠다”고 한 박지영 승무원,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벗어 친구에게 준 정차웅 군, 한 명의 학생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본인은 정작 탈출하지 못한 남윤철 선생님이 보여준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보다 남을 앞세우며 몸을 던져 살신성인을 실천한 의로운 사람들, 자연재해나 대형 사고 때마다 희생자 가족의 고통을 보듬으며 공동체 정신을 일깨우는 자원봉사자들, 이들이 있어 대한민국은 위기때 마다 절망을 딛고 다시 일어섰다. 사람이 위안이고 희망이다. 다시 힘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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