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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세잔 ‘생트 빅투아르山’ 그리고 ..오르세미술관展서 놓쳐선 안될 작품들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프랑스 남부의 아름다운 도시 엑상프로방스(약칭 엑스)에서 태어나고, 자란 폴 세잔(Paul Cézanne,1839-1906)은 ‘근대회화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부유한 은행가의 사생아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화가가 되길 꿈꿨지만 부친의 강권에 못이겨 스무살의 나이에 법대에 입학합니다.

그러나 화가가 되고자 하는 뜨거운 갈망은 아버지도 말릴 수 없었나 봅니다. 아들은 법대를 자퇴하고, 1861년 예술의 본 고장인 파리로 향합니다. 어린 시절 절친하게 지냈던 작가 에밀 졸라의 권유로 파리의 아카데미 쉬스에서 미술을 전공한 세잔은 인상파 화가들과 교류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는 아카데미 쉬스에서 자신의 재능이 그닥 뛰어나지 못함을 간파하고, 우울증에 빠집니다.

빈센트 반 고흐 '시인 외젠 보흐의 초상' 1888, 오르세미술관소장 ©Photo RMN / Musée d‘Orsay - GNC media, 2014

한차례 고향으로 낙향했다가 다시 파리로 돌아온 세잔은 절치부심하며 작업에 박차를 가합니다. 낭만주의 거장 들라크루아(1798-1863)를 흠모한 그의 초기작은 매우 어둡고 거칠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미술계에 이름 석자를 알리고 싶었던 세잔은 살롱전에 매번 작품을 냈지만, 쓰디 쓴 고배만 마셨습니다. 아마도 어둡고 거친 작업 때문이었을까 싶습니다. 모네, 기요맹, 피사로 등 인상주의 화가들과 교류했던 그는 특히 피사로와 야외작업을 많이 했습니다. 

폴 세잔 '생트 빅투아르 산' 1890년경, 오르세미술관소장 ©Photo RMN / Musée d‘Orsay - GNC media, 2014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인상주의 화가라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인상파 전시에서도 그의 작품은 별반 주목받지 못했지요. 아니, 가장 열등한 작업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인상파 화가들이 빛의 표현에 관심을 가진 것과는 달리 세잔은 형태를 탐구하며 엉뚱한 노선을 걸었으니까요. 1877년 제3회 인상파 전시 이후 그는 사태를 감지하고, 아예 독자노선을 걷기 시작합니다. 구도와 형상을 단순화하면서 자신만의 화풍을 외롭게 개척하기 시작한 겁니다.

1886년, 그러니까 마흔일곱의 나이에 그는 고향인 엑상프로방스로 돌아옵니다. 인상파와의 종언을 고한 거지요. 이 때부터 외부와 거의 단절하다시피 하며 독자적인 작업세계를 발전시킵니다. 너무나 하찮은 것으로 여겨졌던 붉은 사과를 그린 정물화는 서구 모더니즘 미술의 효시로 불리며 그를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게 합니다. 그에게 “사과 몇알로 세계를 평정한 작가"라는 호칭이 따라붙게 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사물의 본질을 담아내고자 한 그의 작업은 훗날 야수파와 입체파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후 그는 ‘근대회화의 아버지’로 불리게 됩니다. 천재화가 피카소는 ”나의 유일한 스승 세잔은 우리 모두에게 있어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고 경의를 표한바 있습니다.

“자연의 모든 형태는 원기둥과 구, 원뿔로 이뤄졌다”는 세잔의 이론은 아마도 전세계 미술교과서에 모두 수록돼 있을 겁니다. 그는 자연 대상을 단순화된 기본적인 형체로 집약해냈고, 색채와 붓 터치로 입체감과 원근법을 나타냈습니다. 세잔 이후 현대회화의 가능성은 활짝 열리게 됩니다.

폴 시냐크 '아비뇽 교황청' 1909 ©Photo RMN / Musée d‘Orsay - GNC media, 2014

‘20세기 회화의 참다운 발견자’로 칭송되는 그의 작품 중에는 전성기 작품인 ‘카드놀이하는 사람들(The Card Players)’ ‘목욕하는 사람들’(Les Grandes Baigneuses), ‘생트 빅투아르 산’(Mont Sainte-Victoire)등이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그중 ’카드놀이하는 사람들‘(1893년)은 지난 2012년 카타르 왕실의 공주가 2억5000만달러(한화 약2907억원)에 매입해 전세계 미술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바 있습니다. 이 그림은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거래된 그림‘이란 닉네임이 아직도 따라붙고 있지요.

세잔은 또 정물및 초상작업에서도 수많은 걸작을 남겼습니다. 그가 타계한 직후 열린 대규모 회고전은 젊은 아방가르드 작가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고, 오늘날까지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세잔의 그림 중 대표작으 꼽히는 ’생트 빅투아르 산’이 때마침 서울에 왔습니다. 서울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이 3일 개막한 ‘오르세미술관 전'에 이 작품이 포함됐습니다.

중년 이후 고향 엑상프로방스에서 작업했던 세잔은 고향의 영산인 생트 빅투아르 산을 참 많이도 그렸습니다. 오늘날 생트 빅투아르 산을 그린 유화 37점, 수채화 45점이 전해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똑같은 산을 그렸지만 작품들은 구도며 색채, 분위기가 모두 제각각입니다. 오르세미술관은 세잔의 ‘생트 빅투아르 산’ 유화 2점을 보유 중인데 이번에 그 중에서도 대표작이 서울 전시에 출품됐습니다.

참고로 세잔의 ‘생트 빅투아르 산’은 네덜란드 스테델릭미술관,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콘즈 컬렉션, 필라델피아 미술관, 영국의 코럴 인스티튜트, 국립 스코틀랜드 미술관, 일본 브릿지스톤 미술관, 러시아 푸쉬킨 미술관과 에르미타주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습니다. 물론 이들 미술관들은 세잔의 ‘생트 빅투아르 산’을 미술관의 가장 중요한 자리에 내걸고, 많은 이들이 감상하도록 하고 있지요.

이번에 한국을 찾은 세잔의 유화 ‘생트 빅투아르 산’(1890년경 제작)은 전면으로 소나무 등 나무와 건물의 테라스가 배치된 뒤로, 해발 1100m 높이의 빅투아르 산이 그 늠름한 자태를 자랑하는 구도입니다. 화면 좌측의 소나무가 성스런 산을 호위하듯 무척 커다랗게 그려져, 기존 풍경화의 상식을 깨는 참신함이 돋보입니다. 다채로운 원추형으로 표현된 산은 풍경 전체를 굽어보는 듯합니다.

상식적인 입체감으로부터 벗어난 이 풍경화는 형태에 맞춰 색채를 다양하게 표현했기 때문에 신비롭고도 단단한 밀도를 선사합니다. 이 그림 이후로도 세잔은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생트 빅투아르 산을 끈질기게 그렸습니다.

세잔의 작품은 이번 ‘오르세미술관전’에 모두 석점이 내걸렸습니다. 테이블에 놓인 양파를 그린 ‘양파가 있는 정물'과 ’다섯명의 목욕하는 사람들'이 함께 서울에 왔습니다. 모두 유화 작품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생트 빅투아르 산’은 놓쳐서는 안될 작품입니다.

파리 오르세미술관은 인상주의 미술을 비롯해 후기 인상주의, 신인상주의, 상징주의 등 19~20세기 미술 컬렉션으로 유명한 미술관이지요. 그 미술관의 소장품들이 이번 전시를 위해 대거 서울을 찾았습니다. 2년 만의 한국 나들이이지요. 유화를 비롯해 조각 공예 드로잉 사진 등 총 175점이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 내걸렸습니다.

‘근대 도시 파리의 삶과 예술,오르세미술관 전‘으로 명명된 이번 특별전에는 클로드 모네, 폴 고갱, 빈센트 반 고흐, 폴 시냐크 등 오르세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거장의 회화 작품이 망라됐습니다.

이중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작품은 클로드 모네의 ‘양산을 쓴 여인’(1886년)입니다. 모네의 대표작으로 찬란한 색채와 빛이 눈을 부시게 하는 데다, 흰 옷을 입은 여인의 자태가 매우 아름다와 많은 미술팬들이 좋아하는 그림입니다. 

앙리 루소 '뱀을 부리는 여인' 1907, 오르세미술관소장©Photo RMN / Musée d‘Orsay - GNC media, 2014

신인상주의 대표주자이자, 점묘파 거장인 폴 시냐크의 ‘저녁 무렵의 아비뇽 교황청'(1909년)도 이번 전시의 백미에 해당됩니다. 성벽을 붉게 물들이며 저물어가는 태양빛을 시냐크는 노란색에서 주홍색까지 매우 밝은 색점으로 섬세하게 표현했습니다. 이는 수풀의 어두운 색점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지요. 하늘에 드리운 녹색과 분홍, 보랏빛 색점도 대단히 환상적입니다. 점묘기법의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걸작인 셈입니다.

앙리 루소의 ‘뱀을 부리는 여인’(1907년)도 이번 전시에 나온 그림 중 놓쳐선 안될 작품입니다. 오르세미술관이 ‘해외 반출불허’ 작품으로 분류해놓은 그림인데 이번에 어렵사리 해외 나들이를 했으니까요. 

개막식에 참석한 기 코즈발 오르세미술관장은 “오르세 컬렉션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인 루소의 ‘뱀을 부리는 여인’이 처음으로 오르세미술관을 나왔다”며 “전 세계 관람객들이 이 그림을 보려고 오르세를 찾는데 한국전시가 열리는 기간만큼은 불행하게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도시 문명을 벗어나 자연의 원초적인 세계를 갈망하며 생생한 에너지가 넘쳐나는 독특한 회화들을 남겼던 루소의 역량이 고스란히 투영된 그림이란 점에서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밖에도 반 고흐가 그린 ‘시인 외젠 보흐의 초상'(1888), 드가의 발레리나 조각과 회화, 앙리 툴루즈 로트렉의 ’검은 모피를 두른 여인'(1892) 등도 놓쳐선 안될 작품입니다. 원시적 삶을 찾아 나선 폴 고갱과 그를 추종하던 퐁타방파의 작품도 여러 점 내걸려 관람객의 발길을 붙듭니다.

아울러 사진, 조각, 드로잉, 공예품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들이 함께 나와 근대 도시, 파리의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입체적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전시는 8월31일까지 계속됩니다. 관람료. 성인 1만2000원, 어린이 8000원. 02)325-1077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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