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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수인 연출 “엔론은 기업판 맥베스…조금 더 얻으려고하면 결국 다 잃어”
[헤럴드경제=신수정 기자] 미국 사상 최대 금융 사기 사건으로 꼽히는 엔론 사태가 무대에 오른다. 두산아트센터가 올해 ‘불신시대’를 주제로 선보이는 연극 세편 가운데 두번째 작품인 ‘엔론’이 7일 스페이스111에서 개막한다.

미국 7대 기업이었던 엔론은 분식회계를 통해 회사의 이익을 부풀렸으나 지난 2001년 결국 파산했다. 2000년 엔론의 매출액은 당초 발표한 1007억달러가 아닌 63억달러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고, 한때 주당 90달러에 달했던 주가는 30센트까지 폭락했다. 이 사건으로 엔론의 최고경영자(CEO)였던 제프리 스킬링은 징역 24년형을 선고받았다.

엔론 사태는 경영 실패 뿐만아니라 미국 정부의 부실한 감독 기능, 유명 회계법인과 대형 투자은행의 방조, 정경유착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것으로 드러나 미국 사회에 충격을 던져줬다.

2009년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초연한 연극 엔론은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와 맞물려 전석 매진을 기록하는 등 인기를 끌었다. 주인공 제프리 스킬링을 비롯 등장인물 대부분이 엔론 간부들의 실명으로 등장한다.

[사진제공=두산아트센터]

연극 엔론의 이수인 연출은 “실제 기업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이 국내 무대에 오르는 것은 거의 처음일 것”이라며 “어려운 금융 용어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실제 사건을 재치있고 흥미롭게 풀어낸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연극쟁이들은 경제의 ‘경’자만 들어도 경기하는 사람들인데 대사 중에 ‘헤징(hedging)’ 이런 말들이 자꾸 나와 몇 차례 패닉과 좌절을 겪었다”면서도 “관객들이 전문적인 용어를 모르더라도 배우들이 무슨 의도로 무엇을 노리고 대사를 하는지 명쾌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영국 공연에서는 실화를 토대로 한 줄거리에 파생상품을 사고파는 트레이더들의 춤과 노래, 화려한 영상 등 다양한 볼거리가 더해졌다. 반면 한국에서는 소극장이라는 제약으로 인해 등장인물 간 대화와 감정 등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고 이 연출을 전했다.

이 연출은 “‘기업판 맥베스’라는 평가도 있듯 처음 엔론 대본을 받았을 때 맥베스처럼 허무한 삶에 대한 이야기라는 느낌을 받았다”며 “2인자였던 맥베스가 1인자가 되려다 다 잃은 것처럼 주인공 스킬링은 충분히 부자였지만 조금더 얻으려고 탐욕의 폭주기관차에 올라타 부인과 헤어지고 딸과도 멀어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에너지 기업인 엔론은 자회사에 부실 자산 떠넘기기 등을 통해 실적을 과대포장했지만 거품이 꺼지면서 몰락했다.

그는 “우리 모두가 욕망의 거품을 갖고 사는데 욕망이 지나치면 탐욕이 된다”며 “엔론을 쓴 작가 루시 프레블은 나를 제외한 자본가들의 탐욕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나도 탐욕과 무관하지 않다는 열린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왜 돈을 버는지” 근본적인 목적을 잊어버리고 사는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하는 장면이 스킬링과 딸의 대화다.

“회사의 주가를 확인해야 한다”며 놀아주지 않는 스킬링에게 그의 딸은 “왜?”라고 묻는다. 스킬링이 “왜냐하면 아빠는 너한테 많은 걸 해주고 싶으니까”라고 답하자 딸은 또다시 “왜?”라고 묻는다.

이 연출은 “연습실에서 배우들은 대사를 주고받을 때 몇천만달러를 예사롭게 말하지만, 연습이 끝나고 술집에 가서 맥주 한잔 시켜놓고 만원내기를 하며 수다를 떨고 행복해 한다”며 “내 주변 사람들에게 밥 한끼 살 수 있는 돈, 내 아이에게 기본적인 교육을 시켜줄 돈에 만족한다면 별문제가 없을텐데 더 많은 돈을 원하는데서 불행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작품에는 탐욕에 눈이 멀어 자신의 안위만 챙기고, 서민들의 삶을 파탄내고도 뻔뻔한 고위층에 대한 날선 비판도 담겨있다. 엔론이 파산하기 직전 스킬링은 사임했고, 간부들은 보유 중인 엔론 주식을 처분하는 한편 거액의 상여금을 챙겼다.

극중에는 법정에 선 스킬링이 “시장(市場)이 요구했기 때문에 사임했다”고 변명하자 한 변호사가 “선장인 당신은 침몰하는 배에서 가장 먼저 탈출했다”고 비난하는 장면도 나온다.

이 연출은 “엔론 사태를 보고 세계 경제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허술할 수 있는지 놀랐고, 자본주의 시스템이 힘있는 자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꼈다”며 “관객들이 이 연극을 통해 무조건 모든 것을 믿지 말고 감시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ss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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