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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 정재욱> ‘산소통’ 과 ‘공기통’
세월호 침몰사고를 지켜보면서 접하는 몇 몇 용어가 생소하다. 밀물과 썰물이 바뀔 때 물살이 정지하거나 느려지는 ‘정조시간’, 항로 변경을 뜻하는 ‘변침’, 객실과 구분되는 이중 구조의 ‘격실’을 비롯해 평형수, 흘수선 등은 일반인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잠수부들이 사용하는 휴대용 공기통(에어탱크)도 그 중 하나일 게다. 수중 수색을 위해 잠수요원들은 원통모양의 이 장비를 등에 메고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여기에는 산소는 물론 헬륨과 질소 등이 포함된 압축 공기가 들어있다. 그래서 ‘산소통’이 아니라 ‘공기통’인 것이다. 하지만 스쿠바 관련 용어를 잘 모르는 일반인들은 대개 ‘산소통’이라고 부른다. 의료용으로 쓰이는 산소 탱크와 생긴 게 비슷해서다.

비전문가들이 용어를 잘못 입에 올리는 건 그리 흠이 아니다. 정치인들이 진도 팽목항을 드나들자 노회찬 전 정의당 공동대표가 “산소통 메고 구조활동할 게 아니면 정치인은 현장에 가지 말라”고 일갈했다. 그가 ‘산소통’이라는 틀린 용어를 썼다고 지적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해양경찰 고위간부라면 경우가 다르다. 고명석 해경 장비기술국장은 세월호 범정부대책본부 대변인으로 관련 브리핑을 총괄하고 있다. 그가 대변인을 맡은 것은 전문성은 물론 현장 사정을 속속들이 잘 아는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설마 산소통과 공기통을 제대로 구분을 못한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브리핑 도중 ‘산소통’이라는 용어를 계속 반복해 사용했다. 그렇다고 일반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러 그랬던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실제 그럴 요량이었다면 용어에 대한 정확한 설명부터 하는 게 순서다. 하지만 그런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이쯤이면 해양경찰 장비기술국장의 잠수에 관한 상식이 일반인 수준과 크게 다를 게 없다는 의심이 들만하다.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우려가 현실일 가능성은 한결 높아진다. 바다에 관한 일이라면 바닷가 모래알과 자갈 숫자까지 꿰고 있어야 할 고위 해경간부지만 그는 줄곧 육상근무만 해왔다. 함정 경력도, 심지어 해양 파출소 근무 경험조차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해양 경찰 간부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전문성도, 현장감도 없다는 것 아닌가.

하긴 고 국장만 탓할 일은 아니다. 해경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경감 이상 간부중 66%가 해경 파출소 경험이 없거나 1년 미만이다. 경무관 이상 간부 중 절반은 함정 근무 경력이 아예 없다. 해경 고위 간부가 되는 데 배를 타는 경험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악이었던 해경의 세월호 침몰 초기 대응도 현장을 중시하지 않는 관행과 무관치 않다. 사고대책본부의 갈지(之)자 행보 역시 현장 감각과 전문성을 무시한 필연적 결과들이다. 한국은 3면이 바다, 사실상 섬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정치인 출신이 해양부 장관을 하는 판국이니 더 할 말이 없다. 세월호 참사 이후 대한민국이 어디서부터 달라져야 하는지는 해경의 사례만 봐도 해답이 나온다. 전투 현장 한번 가보지 않은 장수가 이끄는 군대에 승전을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정재욱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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