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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봉틀로 박아버린 입…그렇다고 말을 못하나요
-일우사진상 올해의 작가 수상자 출판기념 전시…윤지선 [누더기 얼굴]展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얼굴이 공격당했다. 온통 재봉틀로 박아버려 형체를 잃은 사진 속 얼굴에서 눈동자만 떼굴떼굴 굴러다닌다. 실무더기로 표현된 머리카락도 꼭 산발한 귀신같다. 폭력적인 방식으로 일그러진 얼굴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무섭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중세 유럽의 태피스트리(tapestry)를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한진그룹 산하 일우재단이 운영하는 제4회 일우사진상 ‘올해의 주목할 작가’ 출판 부문을 수상한 윤지선(40)의 ‘누더기 얼굴’ 연작이다.

“처음엔 주변 사람들 얼굴을 찍었죠. 그런데 사람들이 불쾌해하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모두 제 얼굴 사진으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시간이 갈수록 연기도 표현력도 늘게 되더라고요.”

눈과 입과 귀를 스스로 꿰메어 버린 한 이란 운동가의 사진에서 영감을 얻어 이러한 작품을 시작했다는 그는 셀프 카메라로 촬영한 자신의 얼굴 사진에 광목천을 덧대고 오랜 시간동안 재봉작업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얼굴을 만들어냈다. 재봉틀의 윗실과 밑실의 색깔을 달리하거나 바늘땀을 조절하는 등의 방식으로 작품의 앞면과 뒷면을 다르게 표현했다.

“학교 다닐때 교과서에 나오는 인물들 얼굴 위에 낙서 많이 하지 않았나요? 주근깨도 그려보고 반창고도 붙여보고…. 그런데 옛말에 얼굴에 먹칠하면 안된다는 말이 있잖아요. 왠지 터부처럼 느껴졌어요.”

그는 실과 바늘로 얼굴을 망가뜨림으로써 ‘얼굴에 먹칠’이라는 금기에 과감히 도전했다. 흔히 누군가 듣기 싫은 말을 할 때 ‘주둥이를 박아버린다’라고 하는 말이 위협적으로 들렸다는 작가는 자신의 입을 재봉틀로 ‘박아버림’으로써 기존 질서에 대한 회의와 질문을 더욱 도발적인 방식으로 던지고 있다. 
윤지선, rag face 53, 154x169cm, sewing on photo, 2013 [사진제공=일우스페이스]

“제가 말장난을 좋아해요. 회화에서 회(繪)가 실 사(糸) 변에 모을 회(會)로 돼 있잖아요. 실들의 모임. 그래서 그 말 그대로 실과 사진으로 회화를 하고 싶었습니다.”

하루 10~20시간씩 꼬박 한달 반 이상 재봉틀을 돌려야 하나의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이 지난한 작업과정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작가의 성품이 작품 속에 그대로 묻어나는 대목이다.

일우재단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신수진 교수(연세대학교 인지과학연구소)는 “윤지선 작가의 독창성에 놀라고 그 집요함에 또 한번 놀랐다. 게으른 작가는 독이다. 그런 의미에서 윤 작가는 좋은 작가다”라고 말했다.

일우사진상은 재능과 열정을 지닌 유망한 사진작가들을 발굴해 세계적인 작가로 육성하고자 2009년 처음 제정됐다. 일우사진상출판부문 수상자인 윤지선의 작품들은 세계적인 아트북 전문 출판사 독일 핫체칸츠에서 작품집으로 출간됐다. 전시는 7월 2일까지 대한항공 서소문 사옥 1층 일우스페이스에서 볼 수 있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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