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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칼럼 - 박인호> 한 ‘전원 망명객’의 행복한 인생2막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2013년 강원도 어느 산골로 이주한 A씨(59)는 스스로를 ‘전원 망명객’이라고 부른다. 사실 도시를 떠나 아예 시골로 들어온 이들은 그것이 자발적인 선택이었든, 아니면 막다른 결정이었든지 간에 어찌 보면 A씨처럼 ‘전원 망명객’인지도 모른다. 돈과 명예, 경쟁으로 대변되는 숨 막히는 도시를 탈출해 느림과 여유, 안식의 터전인 전원에 안겼으니 말이다.

명문대 출신의 A씨는 상장사 CEO까지 지냈다. 하지만 지금의 그에게서 화려했던 도시의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빈집을 임차해 살면서 불과 1년 새 그는 검소한 시골농부로 변신했다. 평소 작업복 차림에 장화를 즐겨 신는 그는 각종 작물을 재배하며, 개와 닭도 키운다. 철저하게 도시를 내려놓고 자연에 동화된 삶을 사는 그의 모습에서 참 전원인의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지난 2009년 점화된 귀농·귀촌 열풍이 이어지면서 2013년 한해 도시를 떠난 귀농·귀촌인은 전년보다 20% 증가한 3만2,424가구(5만6,267명)에 달했다. 이중 66%는 전원생활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귀촌인이다. 2010년부터 은퇴가 시작된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721만 명)가 이를 주도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귀촌 중심의 전원행렬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많은 귀농·귀촌인들은 A씨와는 달리 자신이 떠나온 도시를 내려놓으려 하지 않는다. 아니 도시에서 누렸던 돈과 명예에 여전히 집착한다. 각종 모임과 단체를 만들고, 영농조합과 법인을 설립한다. 정부와 지자체의 각종 지원을 따내는데 몰두한다. 그래서 또다시 치열한 인생2막의 경쟁 속으로 자기 자신을 내몬다. 정부와 지자체 또한 고령·공동화로 신음하고 있는 농촌을 살릴 수 있는 대안으로 보고 이를 부추긴(?) 것이 사실이다.

근래들어 농업·농촌의 6차산업화(1차·2차·3차산업의 융·복합)가 화두로 떠오르자, 각 지자체마다 농산물 가공식품 쪽 관련 교육과시설지원(보조금)에 열을 올리고 있다. 2차산업(가공)이 마치 6차산업인양 오도되면서, 가공식품 쪽으로 귀농·귀촌인들이 앞 다퉈 뛰어들고 있다.

더구나 농림축산식품부는 최근 귀농·귀촌 규제완화의 일환으로 ‘귀농‧귀촌인의 농식품사업 참여요건 완화’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자칫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지금처럼 대기업이라는 높은 장벽에 더해 이미 과열상태인 가공식품 시장에서 농식품 진입규제 완화가 귀농·귀촌인의 소득 증대와 일자리 창출보다는 이들 간 ‘서바이벌 게임’만을 격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A씨는 말한다. “사실 시골에서 얻는 소득이란 게 도시 때와 비교해보면 보잘 것 없지요. 하지만 전원에서의 인생2막조차 도시의 1막처럼 치열한 경쟁 속에 매몰되어 살고 싶진 않아요. 돈과 명예, 성공을 좇는 대신 자발적인 가난을 받아들이고 심신의 안식을 얻는다면 ‘인생 비즈니스’로 보아도 그것이 되레 남는 장사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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