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전세계 슈퍼리치들의 미술관-하> 富를 다시 대중에게…대피소 · 격납고를 갤러리로
독일 부호 보로스, 베를린 클럽 인수
나치시절 대피소 ‘벙커갤러리’ 로 개조

중국계 인도네시아 부호 부디 텍
상하이 비행기 격납고를 미술관으로
착한부자들 끝없는 미술 · 문화재 사랑



지난 3월 21일 중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립미술관이 상하이에 문을 열었다. 중국 미술계 ‘큰 손’인 금융재벌 류 이첸, 왕웨이 부부는 2012년에 상하이 푸동에 룽 미술관(龍 美術館, Long Museum)을 열었는데 올 3월 또다른 미술관을 상하이 서안에 개관한 것이다.

미술관 주변은 여기가 중국일까 싶을정도로 깨끗하고 산뜻했다. 친환경적으로 조성된 수변, 석탄을 공급하던 철로와 시설을 그대로 살린 건물도 예상 밖이었다. 개관 후 다시 내부공사를 해 일반 공개는 5월말쯤 할 예정이란다. 이런 중국 신흥부자들의 미술과 문화재 사랑은 가끔 도를 넘은 것처럼 보이지만 투자보다는 문화적, 사회적 기여라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사실 일반 시민들의 생각처럼 미술품은 그렇게 고수익을 보장하는 투자재가 아니다. 또 거래시 수수료 비중이 커 실제 수익을 내기란 그리 쉽지 않다.

문화유산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지닌 착한 부자들의 그림사랑은 동서를 가리지 않는다. 프랑스의 억만장자 프랑수아 피노는 베니스에 피아트가 지원하던 팔라조 글라시를 인수해 사립미술관으로 개관하더니,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손을 빌어 17세기에 건립된 세관 건물을 또다른 미술관인 ‘푼타 델라 도가나’로 만들었다. 이후 베니스는 르네상스미술의 도시가 아니라, 현대미술의 도시로 바뀌고 있다. 

베를린 마테지역의 BUNKER-보로스 컬렉션. 1929년 바르셀로나 엑스포에 독일관으로 지어진 미스 반데 로에의 작품을 증축한 집이 옥상에 들어서 있다. [사진=정준모]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가 열렸을 때는 비엔날레 보다, 더 이목을 끄는 2개의 전시가 열렸는데 바로 프랑수아 피노 케어링그룹 명예회장의 전시와 프라다 재단의 격돌(?)이 그 것이었다. 프라다는 베니스의 카 코너 델라 레지나에서 하랄드 제만을 전설의 큐레이터로 만든 ‘태도가 형식이 될 때’를, 피노 회장은 두 곳의 자기 미술관에서 자신의 컬렉션으로 대규모 전시를 만들어 맞불을 놓았다.

이에 대응하듯 명품 제조업체 루이비통, 모에 헤네시(LVMH)의 오너인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프랑스 파리에 자신의 컬렉션을 일반에게 공개할 목적으로 루이비통 창의재단을 설립했다. 프랑크 게리가 설계한 이 미술관은 올연말 개관할 예정이다. 아르노 회장은 전시디렉터로 수잔 파제를 영입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상속자이자 철강기업 티센의 안주인이기도 한 프란체스카 본 합스부르크는 1992년 마드리드에 티센미술관을 개관한 이래 비엔나에 현대미술만을 수집하는 사무실을 별도로 운영 중이다. 수집한 작품을 해외 여러 미술관에 대여해 순회전시 형식으로도 공개하고 있다. 그의 소장품 목록에는 이불이나 서도호 같은 한국작가의 이름도 올라 있다.

그리스의 실업가이자 컬렉터인 다키스 요나우의 컬렉션도 순회전 형식으로 뉴욕의 뉴 뮤지움을 비롯한 유수의 미술관에서 공개된 바 있다. 제프 쿤스는 그의 요트 내외부를 치장할만큼 가까운 사이인데 이 전시의 큐레이팅도 그가 맡았다. 펀드 운용으로 큰 돈을 번 소로스는 1992년 프라하에 SCCA라는 이름의 아트센터를 설립해 제3세계간 미술네트워크 조성사업을 진행 중이다. 

중국의 금융재벌 류 이첸, 왕웨이 부부가 상하이 푸동에 건립한 롱(龍) 미술관.

키예프하면 성 소피아 성당을 빼 놓을 수 없다. 하지만 이젠 핀축아트센터를 추가해야 한다. 2006년 개관이래 현대미술의 보고가 됐기 때문이다. 미술관을 둘러보고 꼭대기층의 카페에 찾으면 흰색의 정갈한 공간이 나온다. 이곳에서 차 한잔을 마시며 시가를 내려다보면 키예프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스트 원 그룹의 빅터 핀축은 2009년부터 매 2년마다 35세 미만의 작가에게 10만달러의 상금을 수여하는 ‘미래의 젊은 작가상’을 제정해 작가들을 후원하고 있다.

독일의 그리스티안 보로스는 2008년 베를린 미테 지역에 한 때 잘 나가던 테크노클럽을 인수해 벙커갤러리를 열었다. 1943년 나치 시절에 지어진 5층짜리 대피소를 개조해 약1000㎡의 넓이에 80여 개의 전시실을 갖추고, 자신의 현대미술 컬렉션을 전시하고 있다. 이스탄불현대미술관을 설립 운영하는 제약재벌 오이야 에크자시바시도 현대미술의 큰 손으로, 고대문화 도시로 알려진 이스탄불에 현대미술이라는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 중국 부호들의 미술품 사랑은 중국의 문화재와 현대미술, 모두를 상종가로 올려놓고 있다. 중국계 인도네시아 부호인 부디 텍은 세계미술계 파워컬렉터 ‘톱10’ 중 6위에 랭크됐었다. 부디 텍은 인도네시아의 농업 및 축산업계 거물로, 수년간 중국 미술품을 수집해왔다. 2008년 말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유즈미술관을 열었고, 상하이에 비행기 격납고를 개조한 새로운 미술관을 곧 개관할 예정이다. 

우크라이나의 핀축아트센터.

부동산 개발업자인 루쥔과 루쉰 부자는 작년초 난징에 쓰팡미술관을 개관했다. 호텔과 콘퍼런스센터, 레지던스 등 11동의 건물이 들어선 복합단지 중심에 쓰팡미술관이 있다. 기업가 류원진은 2억7900만달러를 투자해 시베이지역 인촨에 ‘황허아트센터’를 열었다. 이로써 2015년까지 3500관의 미술·박물관 개관을 목표로 했던 중국은 2012년에 3866관, 2013년에 451관이 오픈해 목표를 조기달성했다.물론 개중에는 허울 뿐인 미술관도 있지만, 중국의 이런 현상은 20세기초 미국을 문화대국의 반열로 끌어올린 억만장자들의 미술관 설립붐과 흡사하다.

‘착한 부자’들의 모습을 보면 역시 큰 그릇에 큰 돈이 담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 미술품은 미술관이라는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면 공공재가 돼, 우리 모두의 품으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슈퍼리치들은 이를 잠시 보존하고, 관리하다 세상에 되돌려놓는 것이다. 돈은 돌고 도는 것이라지만 이렇게 도는 돈이라야 정말 ‘값진 돈’이 아닐까.

글, 사진=정준모(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