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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담동에 들어선 ‘발견과 영감의 공간’…그곳에서 사색하는 것도 ‘여행’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여행은 설렘이다. 그리고 도전이다. 숨막힐 정도로 빡빡한 일상에 지친 내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다.
언제나 우리 마음을 설레게 만드는 두글자 ‘여행’을 테마로 한 참신한 도서관이 서울에 생겼다. 현대카드(대표 정태영)가 강남구 청담동에 만든 ‘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Travel Library)’다.

쉽게 접하기 어려운 여행관련 전문서적을 비롯해 총 1만4700여권의 장서를 보유한 이 곳은 지난해 2월 현대카드가 가회동에 만든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에 이은 두번째 도서관이다. ‘속도’와 ‘효율’이 금과옥조처럼 떠받들어지는 디지털 시대에, 가장 아날로그적 공간인 도서관을 통해 책이 선사하는 우연한 발견과 사유의 즐거움을 만끽해볼 수 있는 곳이다. 

현대카드가 청담동에 조성한 ‘트래블 라이브러리’ 내부. 가장 동적인 ’여행‘을 가장 정적인 ’라이브러리’ 형태로 꾸민 것이 특징으로, 진정한 여행이란 상품처럼 소비하는 게 아니라 ‘영감’을 발견하는 여정임을 확인시켜주는 공간이다.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왜 도서관일까, 왜 ‘여행’이 테마일까?= 현대카드는 ‘디자인 라이브러리’가 멋장이들 사이에 ‘꼭 가봐야 할 곳’으로 꼽히며 핫 스팟(hot spot)이 되자, 제 2탄으로 ‘트래블 라이브러리’를 만들었다. 종이책이 주는 묵직한 질감, 오래될수록 더 그윽해지는 서향(書香), 책갈피의 사각거림을 느끼며 미지의 세계와 반갑게 조우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현대카드 브랜드본부장인 이미영 상무는 “이제껏 없었던 세계, 없었던 체험을 제공하고자 도서관을 만들었다. 정보의 홍수로 검색은 쉽고 빨라졌지만, 영감을 얻을 기회는 오히려 드물어지고 있다. 이에 우리는 사람들이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어떤 책이든 손에 집히는대로 읽으며 뜻밖의 ‘발견과 영감’을 얻었으면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많고 많은 테마 중 ‘여행’일까. 이는 여행이 라이프스타일의 전 영역과 연관된 주제로, 이질적 문화와 세계를 이해하는 열쇠라는 판단 때문이다. 실제로 여행에 대한 현대인들의 갈망은 날로 커지고 있다. 하루하루 바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들일 수록 여행을 더욱 간절히 소망한다. 지난해 해외여행을 다녀온 한국인은 약 1500만 명에 이른다.

하지만 이제 양적 팽창의 이면도 살펴봐야 할 때다. 자유와 모험, 도전정신같은 여행의 진정한 가치가 사라진 대신, 유명한 여행지를 단순히 찍고(?) 오는 목적지 중심의 ‘관광(sightseeing)’이 크게 늘었다. 이에 트래블 라이브러리는 여행의 의미를 ‘일상의 경계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지적 활동’으로 재정의하고 있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최신유행과 소비의 메카인 청담동에, 아날로그적 미디어의 대표격인 ‘책이 모여 있는 공간’이 들어섰다는 점이다. 럭셔리 패션매장과 고급식당들 사이에, 책이 뿜어내는 고졸함이 향기를 발하기 시작했다.

▶어떤 책이 있을까?= 지구에 ‘위도’와 ‘경도’가 있듯, 트래블 라이브러리의 책들은 ‘테마’와 ‘지역’이라는 두 축으로 구성됐다. 아트 앤 아키텍처(Arts∙Architecture), 어드벤처(Adventure), 트래블 포토그래피(Travel Photography) 등 13개의 ‘테마’와 전세계 196개국을 망라한 ‘지역’별 분류를 조합해 장서가 선별됐다. 


도서 선정작업에는 영국, 미국의 글로벌 북 큐레이터(Book Curator) 4명이 참여했다. 여행전문가, 에디터인 이들은 1년간의 큐레이팅을 통해 방대한 컬렉션을 짰다. 큐레이터들은 주목할만한 769권의 장서에 대해 직접 코멘터리를 작성했고, 이는 라이브러리에 비치된 서적검색용 아이패드를 통해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서가 곳곳에는 흥미로운 책들이 숨어 있다. 살바도르 달리가 직접 그린 삽화를 담은 ‘돈기호테’, 브라질 출신의 유명 다큐멘타리 사진작가 세바스티앙 살가도(70)의 사진집 ‘제네시스’ 등이 그 예다. 호세 사라마고, 오르한 파묵, 파블로 네루다 등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들의 여행기도 만날 수 있다.


건축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겐 ’아메리카 건축 1000‘, ‘Paris Vertical’, ‘가우디 Pop-ups’ 같은 책이 반가울 테고, 팝아티스트 리히텐슈타인의 산뜻한 그림을 좋아한다면 테이트모던이 발간한 ‘리히텐슈타인’에 손이 갈 것이다. 평소 현대미술관 투어를 즐겼다면 전세계 컨템포러리 뮤지엄의 최신동향을 망라한 ‘뮤지엄북’이 눈에 번쩍 뜨일 것이다.

또 ‘노란 테두리’로 잘 알려진 126년 역사의 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전권이 확보됐고, 세계 최초이자 유일의 여행지리저널 ‘이마고 문디’ 또한 전권이 컬렉션됐다. 111개 언어사전과 세계 주요도시 90여곳의 시티 맵도 비치됐다.

트래블 라이브러리에선 각자의 ‘디카’나 휴대폰으로 책의 내용과 이미지를 촬영할 수 있다. 아쉽게도 대출과 복사는 안되지만, 촬영은 얼마든지 허락돼 있다. 책의 구매도 가능하다.
공간 디자이너 카타야마 마사미치가 디자인한 서가 배치와 내외부 공간구성 또한 독특하다. 천장까지 책장으로 연결된 역동적인 서가 구조와 색다른 동선, 계단 등은 ‘여행자의 모험정신’과 맥락을 같이 해 흥미롭다.


▶고졸한 빈티지 아이템, 오브제도 눈길= 여행을 테마로 한 희귀한 가구와 인테리어 아이템 등 90여점에 달하는 오브제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항공기의 이착륙을 알리던 1950~60년대 수동식 비행안내판, 빈티지 지구본과 망원경, 북유럽의 와그너 체어, 영국의 윈저 체어, 아프리카의 동물모형 스툴 등은 잔잔한 여행체험을 제공하고 있다. 현대카드 스텝들이 세계 곳곳의 앤틱갤러리와 벼룩시장을 누비며 수집한 것들이다.

비정형의 선과 면으로 마치 동굴처럼 디자인된 트래블 라이브러리는 곳곳에 숨겨진 공간이 여럿이다. 아날로그 지도를 통해 도시를 ‘발견(Find)’하고, 구글 어스를 통해 자신만의 여정을 실제 경험하고 즐기며(Play), 나만의 구체적인 여행 계획을 세울 수 있는(Plan) 방 들이 조성됐다. 따라서 가회동의 디자인 라이브러리에 비해 보다 능동적이고, 입체적인 체험이 가능해졌다.


트래블 라이브러리는 여행 떠나기 전 들러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공간이라기 보다는, 진귀하고 값진 책을 매개로 방문자를 ‘새로운 미지의 세계’와 만나게 하는 공간이다. 즉 숨겨진 코너를 투어하고, 오브제를 음미할 수 있어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여행지인 셈이다.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주인공 앨리스는 회중시계를 보는 토끼를 따라 원더랜드로 들어간다. 그리곤 놀라운 환상과 모험을 겪는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우리 또한 이같은 일탈을 갈망한다. 새로운 모험을 꿈꾸는 이들에게 트래블 라이브러리는 환상의 세계로 훌쩍 떠나게 하는 통로(gateway)이다. 여행의 본질적 가치에 맞닿아 있는 좋은 책들과 신비한 방, 오브제가 가득한 이 공간은 나만의 시계토끼를 만날 수 있는 상상마당이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도서관의 규모가 다소 작다는 것이다. 혼잡을 피하려면 개관시간이나 늦은 저녁에 찾는 게 좋을 듯하다.
트래블 라이브러리는 현대카드 회원(동반 1인) 기준으로 월 8회까지 무료입장할 수 있다. 매주 월요일과 설, 추석 연휴는 휴관한다.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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