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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광장 - 정용덕> 日 지식인들의 편협성과 한일관계의 미래
생자와 사자 교류한다는 日철학
야스쿠니 신사 사자와 동일 적용
일본인 외 이국인은 포함 안해
역사교과서 염려 한국을 몰이해



이달 8일 인문사회과학자들의 인류문명 세미나에 일본인 철학자가 초청연사로 참석했다.

아베 일본총리가 평화헌법의 사실상 무력화인 ‘집단적 자위권’ 행사 방침을 밝히기 꼭 일주일전이다. 그 철학자는 도쿄대 교수를 역임한 일본철학, 특히 일본불교의 최고 권위자라고 소개되었다. 실제로 그의 발표는 동서양의 철학을 넘나드는 풍부한 지식을 담고 있었다.

그는 서두에서 한·중·일 간의 상호협력이 바람직한 데 민족주의와 상호적개심이 더 확대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과거 일본의 침략전쟁이 원인임을 인정하면서, 이 점에 대해 일본이 깊이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의 반성만 일방적으로 요구하면 일본인들의 반발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문제는 정치뿐만 아니라 ‘국민감정’도 관련된 사안이기 때문에 단순하지 않다고 했다. 이어진 그의 발표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오늘날 철학의 중심 담론인 ‘타자(the other)’의 문제에 대해 서양과 일본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일신교인 유대·기독교 문명권의 서양에서는 ‘절대 신’을 궁극적인 타자로 보기 때문에, 그 외의 타자로서 인간(human beings) 외에는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인간들 사이의 관계는 절대 신의 사랑을 바탕으로 한 개인 대 개인의 보편적 관계로 설정된다.

이와는 달리, 일본불교에 뿌리를 둔 일본철학에서는 인간 외에 심지어 ‘사자(the dead)’까지 포함하는 다양한 타자들을 인정한다. 일신교의 세계에서 사자는 신에게 완전히 넘겨지는 존재이며, 따라서 생자(the living)들과의 관계는 그것으로 끝난다.

반면에 일본인들은 사자와 생자가 지속적으로 교류하는 것으로 여긴다. 더 나아가, 근래에 재해나 혹은 남에 의해 생명을 잃은 사자들은 그들의 영혼이 얼마나 잘 위로받는가에 따라 생자들에게 재앙 혹은 번영을 가져다준다고 믿는다. 2011년 동북부 대지진의 원인을 그 지역 사자들의 영혼이 잘 위로받지 못했던 역사에서 찾는 것이 예다.

이처럼 생자가 사자와 교류하며 ‘인도(guide)’된다는 생각은 야스쿠니(Yasukuni) 신사에 있는 사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그리고 현재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제2차 대전 당시 그 자리에 없었다.

이와 같은 그의 발표에 필자는 너무도 궁금한 다음의 질문들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심지어 죽은 이까지 포함하는) 일본인들의 다양한 타자 범주에 일본인 외에 다른 나라 사람들은 포함되지 않는지 여부를 물었다. 이 질문에 대해 그는 일본인들이 자신들만 주로 생각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고 답했다.

이어서, 사자가 생전에 무슨 일을 했는가에 따라 생자와의 교류와 ‘인도’ 내용에 차이가 있을 수 있는지, 만일 있다면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사자가운데 제2차 대전의 전범들과 그 외의 사자들과는 차이가 있지 않겠는지, 당시의 상황을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이 차이에 대해 혼란스럽게 만드는 역사교과서 수정에 대해 염려하는 한국인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지 물었다.
이 일련의 질문에 대해 그는 사자가 누군가에 따라 생자와의 관계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대답만 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한·일관계의 미래에 대해 필자가 암담하게 생각한 것은 그가 소개한 독특한 일본의 타자 개념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일본 최고의 지식인이 현실에 적용하는 편협한 접근방식 때문이었다.

정용덕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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