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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廣장·光장·狂장
열린 광장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개방성’을 기본으로 한다. 추모 · 휴식 · 공연 · 응원 등 상업적인 목적이 아닌 공공의 이익을 전제한 모든 행사가 가능하다.
서울 광장은 지금 노란 물결이다. 세월호 침몰 희생자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동시에 우리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는 장소가 되고 있다. 넒은 공간, 광장(廣場). 지금은 고인이 된 작가 최인훈이 소설에서 ‘대중의 밀실’이라 표현했던 광장은 대중의 다양한 감정이 표출되는 장소로 인식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광장으로 자리잡고 있는 ‘서울 광장’이 그렇다. 다양한 사건과 함께 다양한 색깔로 옷을 갈아 입어 왔다.

지난 2002년 월드컵 때에는 ‘붉은 물결’로 파도쳤다. 수 만 명의 거리 응원객들이 지금의 서울 광장을 중심으로 소공로, 태평로까지 넘쳐났다. 그 물결은 대한민국의 열정을 보여주는 장면이 됐고, 외신 등을 타고 세계에 전파됐다. 4년마다 돌아오는 월드컵 때마다 목격할 수 있는 또다른 상징이 된 것이다.

2008년에는 ‘주황색 촛불’이 광장을 가득 메웠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과정에서 광우병에 대한 우려가 커졌고 촛불집회로 이어졌다. ‘촛불로 세상을 바꾸자’는 정치적인 슬로건까지 더해지면서 촛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명박산성’이라는 차단벽까지 쌓아야 했다.

2009년 5월말에는 노란색으로 바뀌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국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노제가 이어지며 서울광장은 노란 풍선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진 노란 모자 등으로 뒤덮였다.

그리고 2012년에는 ‘강남 스타일’로 세계적인 가수가 된 싸이의 공연에 열광한 팬들의 집단 말춤 퍼포먼스가 펼쳐지기도 했다.

광장의 색깔은 매우 중요하다. 하나의 색깔만 나타난다면, 광장은 더이상 ‘열린 공간’이 아닌 특정 목적을 위한 ‘닫힌 공간’이 된다. 실제 해방 직후 좌익과 우익의 집회 장소였던 ‘서울운동장’과 ‘남산공원’은 미 군정기 2년만에 한 쪽 목소리만 나는 공간으로 바뀌기도 했다.

광장의 다양한 색깔은 다양한 사회 가치가 보장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처럼 특정 이슈와 관련해 보수와 진보의 집회가 동시에 열리는 모습은 보기에 따라 매우 건전한 사회현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처럼 열린 광장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개방성’을 기본으로 한다. 실제로 서울광장은 모두에게 열려 있다. 상업적인 목적이 아닌 공공의 이익을 전제한 모든 행사가 가능하다. 


그렇다고 개방성이 완전히 확보된 것은 아니다. 행사를 열기 위해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특히 이 곳에서 집회를 하기 위해서는 종로경찰서에 신고해야 하는 등 질서 유지를 위한 절차적인 불편함이 뒤따른다.

약간의 비용도 든다. 서울광장은 1㎡당 10원의 이용료만 내면 1시간 이용이 가능하다. 서울 광장 전체(1만3207㎡)를 2시간 이용할 경우 26만4000원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사실 우리나라의 광장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서울광장도 이제 고작 10년에 불과하다. 광화문 광장도, 청계천 광장도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도로였다. 유럽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장을 우리나라에서는 찾기 어렵다. 서울의 옛 지도를 보더라도 신작대로는 있었지만 광장을 찾기란 어렵다. 민의를 모아서 정책을 결정하기보다는 백성을 통치의 대상으로 삼은 까닭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어찌됐든 서울광장이 있어 반갑다. 변화무쌍한 광장을 지켜보는 것 역시 흥미롭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5주기인 23일을 맞아 이전보다 더욱 노랗게 물든 서울광장은 6월 브라질 월드컵 때엔 비록 예전만 못하더라도 다시 빨간 물결로 출렁일 것이다.

박도제 기자/pdj24@heraldc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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