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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구여제’ 김가영… 그는 권좌에서 내려온 적 없다
한쪽 어깨와 가슴골을 드러낸 과감한 옷차림의 한 여성. 테이블 앞에 엎드리더니 표독스럽기 그지 없는 눈빛으로 공을 노려본다. 포식자 독거미가 뿜는 압도적인 공포감. 외연의 아름다운 자태와 기묘하게 어우러져 뿜어내는 강력한 카리스마는 ‘여제(女帝)’의 이미지 그 자체다.

‘당구 여제’ 김가영(31ㆍ인천당구연맹)’은 한국이 배출한 세계 최강의 당구 선수다.

북미와 유럽, 아시아 유명선수들이 대거 출전하는 세계 여자 프로 당구 최고의 무대인 미국프로당구연맹(WPBA)에서 2014년 현재 랭킹 2위로, 1위 앨리슨 피셔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2009년과 2011년에는 1위를 이미 달성했고, 이후 2위 밑으로 내려가 본 적이 없다.

2001년부터 2011년 귀국할 때까지 현지에서 피땀을 쏟으며 거둬낸 성과다.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독거미‘ 재닛 리처럼 세계적인 선수가 되겠다던 10여년 전 바람은 이미 이뤘다. 그의 집에는 상패와 인증서가 수백 개씩 쌓여 있다. 국제대회 타이틀만 최소 20개, 국내 대회 타이틀은 최소 50개. 이 밖의 자잘한 대회나 2,3위 입상 기록은 일일이 기억하지도 못 한다.

김가영은 국내 남녀 당구선수중 연금을 받는 유일한 선수다. 30점 이상부터 연금이 지급되는데 김가영은 무려 70점대를 쌓았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3쿠션 부문 금메달과 2013년 인천 실내 아시아경기대회 1쿠션 부문 금메달을 땄던 황득희도 아직 30점에 도달하지 못했다.

김가영의 당구 실력은 비단 주종목인 풀(포켓볼) 분야에서만 발휘되는 건 아니다. 일반 동호인들이 즐기는 3쿠션과 4구 게임도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 4구는 너스(세리ㆍ모아치기)로 수십점씩 연속득점이 가능한 700점 수지 정도다.

3쿠션은 국제 규격 대대에서 “동호인들과 어울려 치면 25점을 놓고 친다”고 했다. 굳이 이를 4구 점수와 비교하자면 500점 정도의 실력이다. 3쿠션 인구가 수백만명에 달하는 남성 당구 동호인 중에서도 25점 이상은 많지 않다. 여성중에선 동호인과 역대 선수를 통틀어 25점을 놓고 치는 이는 2~3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즘 당구 전문 케이블채널 빌리어즈TV에서 재방영되고 있는 여자 3쿠션 대회에서 김가영의 3쿠션 실력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지난 3월에 열렸던 제6회 경기도연맹회장배 토너먼트로, 이 대회에서 김가영은 한두 수 위의 기량을 과시하면서 3쿠션 부문 여성 선수들을 모조리 꺾고 우승했다. 이 경기 중계가 화제가 되면서 “김가영이 3쿠션 선수로 전업했느냐“며 궁금해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재미로 나간 대회였다”고 한다.

김가영의 실력 원천은 기본 자질과 재능이 아니다. 엄청난 훈련량이다. 김가영은 “1년 365일 중 큐를 들지 않는 날은 열흘 이내”라고 말했다. 휴일, 명절 가리지 않고 훈련한다는 뜻이다. 한밤중 벌떡 일어나 뚝섬유원지 소재 전용구장을 찾아 몇시간이고 공과 씨름한다. 훈련중독증이라고도 표현 가능할 정도다.

지난 2월 WPBA 마스터스대회 결승전에서 영국의 켈리 피셔를 물리치고 2연패를 달성할 수 있었던 건 그래서다. 피셔는 세계 아마추어 기구인 WPA 랭킹 2위에 올라 있는 강호다.

그런데 이 여성, 당구의 틀 안에 가둬 놓기에는 끼도 재능도 워낙 많다. 그렇게 훈련만 하면 언제 쉬고 언제 노느냐고 물었더니 틈틈이 재즈피아노와 댄스스포츠도 익히고 있단다. 스키, 바이올린도 특기다. 15살 무렵까지 8년간 배웠던 피아노를 최근 다시 배우고 있고, 지난 2012년 댄스위드더스타 시즌2 출연을 계기로 계속 댄스스포츠도 배우고 있다고 했다.

“뭐든 반복학습이 가장 중요한 거 같아요. 댄스스포츠는 아직 잘한다고 이야기 못 할 수준이에요. 예전에는 ‘몸으로 하는 거’는 창피해서 엄두도 못했는데 방송 출연하면서 창피한 거 다 보여주고나니까 자신감만 남더라고요. 공연 총괄을 했던 박지우 총감독님과 송종국 씨 파트너로 나왔던 이지은 감독님께 개인지도를 받고 있어요.”

이 덕분일까. 김가영은 요즘들어 더욱 예쁘고 여성스러워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안 그래도 171㎝의 장신에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지닌 그가 전신의 움직임과 신체의 맵시를 강조한 스포츠댄스를 체화하면서 뇌쇄적 관능미까지 내뿜고 있다. 그는 올초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절을 맞아 현지 국영방송사인 CCTV 체육 채널에서 댄스스포츠를 선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가영은 내달 6월 1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리는 세계풀당구협회(WPA) 중국 오픈 남녀대회에 출전한다. 김가영은 이 협회 랭킹 12위로, WPBA 대회와 병행해 출전하고 있다. 이번 대회에는 랭킹 11위인 차유람(27)도 출전한다. “이번에는 저 컨디션 너무 안 좋아요”라며 엄살을 부렸지만 출전을 확정지은 이상 우승이 목표인 것은 선수 누구나 마찬가지다.

말이 나온 김에 하는 이야기. 김가영과 차유람은 참으로 미묘한 사이다. 김가영에게 청순한 외모와 걸출한 실력으로 어느덧 자신의 인지도를 훌쩍 뛰어넘은 차유람은 ‘빼어난 후배’이자 ‘막강한 라이벌’이다. 한 때는 질투심에 사로잡혀 집에서 밤새 펑펑 울기도 했단다. 이제는 “서른 넘어 그런 것은 다 훌훌 털어버렸다”고 했다.

하지만 원든 원치 않든 이 둘은 곧잘 비교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김가영은 훌쩍 커버린 차유람이 한 대회에 동반 출전할 경우 그와 매번 자웅을 겨뤄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누가 더 좋은 경기를 할지, 어떻게 될지 모르지요. 하지만 저도 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할 거에요.”

여제와 공주. 둘 간의 전쟁은 현역 생활 내내 계속될 것 같다. 어쨌든 김가영은 아직 권좌에서 내려오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다. yj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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