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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길용 기자의 화식열전> 이번엔 자본민주화?…盜亦有道 (도역유도) 다
한때 은행의 고배당 논란이 뜨거웠다. 외환 위기로 국내 은행 지분을 대부분 갖게 된 외국자본이 배당으로 국부를 가져가는 데 대한 비난여론이 높았다. 정부와 금융당국까지 배당을 자제하라며 은행들을 호통쳤다.

그런데 이젠 정부가 사내유보금에 과세하겠다며 배당을 더 하라고 다그친다. 대기업들이 돈을 쌓아만 두고 있어 내수가 부진하다는 이유다. 은행이나 대기업이나 외국인 지분 높은 건 오십보백보다. 그 때는 국부유출이고 지금은 아닌가?

유보금으로 투자를 늘리라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1997년 외환위기는 기업의 과잉투자가 불러온 비극이었다. 이후 기업들은 무분별한 투자는 자제하고, 경영 충격을 흡수할 완화장치로 잉여금을 축적했다. 그런데 돈 쌓아두지 말고 투자를 하란다. 투자 판단은 기업 고유의 몫이다. 정부가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다. 투자 결과가 과잉이 되면 누가 책임을 지나?

기업 돈으로 국민 소득을 높여 경제양극화를 완화하겠다는 정부 외침도 공허해 보인다. 유보금 많은 기업의 직원들은 지금도 월급이 많다. 유보금 적은 중소기업이나 한계기업은 직원은 임금도 상대적으로 낮다. 대기업만 유보금 풀어 월급 올리면 월급쟁이 간 양극화는 어떻게 될까?

임금 인상은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는 게 기본이다. 정부가 재정 확대와 금리인하, 부동산 규제완화를 추진하는 마당에 임금까지 올린다면 인플레이션을 피할 수 있을까?

유보금 과세 주장은 지난 대통령 선거 때 경제민주화 주장과 닮았다. 기업의 ‘개과천선’을 유도해 경제질서를 바로잡겠다는 명분이다. 유보금은 자본항목이니 ‘자본민주화’라고 이름 붙일만하다. 그런데 지금 경제민주화는 어떻게 됐나? 반기업 정서만 잔뜩 키워 원산지인 정치권 내에서조차 사실상 폐기 상태다. 기업이 돈을 벌고, 만약에 대비하는 게 과연 바로 잡을 대상인가? 우리 기업들의 유보금은 글로벌 경쟁업체와 비교해도 그 규모가 작다.

장자(莊子)는 춘추시대 유명한 도둑인 도척의 입을 빌려 ‘도역유도(盜亦有道, 도둑에게도 도리가 있다)’라고 말했다. 털 집의 재산 상태를 살피는 것은 성(聖), 남보다 먼저 도둑질을 시작하는 것은 용(勇), 맨 나중에 나오는 것은 의(義), 훔칠 것의 가부(可否)를 아는 것은 지(知), 도둑질한 물품의 평균 분배는 인(仁)이라 했다. 기업이 번 돈은 정부 게 아닌데, 이를 정치적 이유로 탐낸다면 도둑과 무엇이 다를까? 그래도 굳이 탐이 난다면, 도역유도의 뜻을 곱씹어 봄이 바람직해 보인다.

홍길용 기자/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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