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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냉전 이후 최악의 EU-러 관계…세계 경제의 시한폭탄?
[헤럴드경제 =천예선ㆍ문영규 기자] 유럽이 냉전종식 이후 최대 규모의 고강도 러시아 제재를 단행하면서 그 후폭풍이 핵으로 부상하고 있다.

EU 28개 회원국은 29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유럽 금융시장에서 러시아 국영은행 채권 및 주식 거래 금지 ▷러시아에 대한 무기수출 금지 ▷심해 시추 및 셰일 가스 탐사 기술 협력 금지 등 금융, 방위, 에너지 부문의 대(對) 러시아 경제 제재안에 합의했다. 미국은 러시아 대외무역은행(VTB)과 자회사인 뱅크 오브 모스크바, 러시아 농업은행 등 3곳에 대한 미국인의 신규 금융거래를 중단시켰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냉전 종식 이후 가장 강력한 러시아 제재에 유럽연합(EU)와 미국이 합의했다”며 “25년간 이어져온 러시아와의 관계의 장(chapter)이 닫히고 있다”고 평가했다.

러시아는 유럽연합(EU)의 3대 무역 파트너로, 지난해 EU와 러시아간 무역 규모만 3300억달러(338조원)에 달했다.

유럽의 에너지 기업이 가장 큰 타격을 볼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이번 제재가 막 싹튼 유럽경제 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는 비관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러시아는 서방권 제재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0.3%(작년 1.3%)로 주저앉았다. 그럼에도 서방에 보복성 무역조치를 내놓는 등 ‘강대강’ 맞불작전으로 맞서고 있어 세계경제의 시한폭탄으로 급부상했다.


▶유럽 내년까지 900억유로 손실=유럽은 고강도 대러제재에 따른 손실계산에 분주하다. EU옵서버에 따르면, 이번 제재로 EU 경제손실액은 내년까지 900억유로(약 123조7000억원), 러시아는 980억유로(134조6900억원)으로 추산됐다.

구체적으로 러시아 경제가 올해 230억유로(GDP의 1.5%), 내년 750억유로(GDP의 4.8%)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측됐다. 그러나 일부 경제전문가들은 “러시아 기업이 이번 제재로 7440억유로까지 손실을 입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EU 집행위원회는 “대러제재로 러시아가 보복성 무역금지를 단행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유럽경제는 올해 400억유로(GDP의 0.3%), 내년 500억유로(GDP의 0.4%) 손실을 볼 것”이라고 예측했다.

러시아와 밀월관계에 있는 독일도 충격이 불가피하다. 독일 외무장관 프랭크-발터 슈타인마이어는 “독일 경제가 이번 제재로 받을 충격은 제한될 것”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독일기업 로비단체 ‘동유럽경제관계위원회’는 “이번 제재와 연관된 독일 일자리 35만개가 위협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독일과 러시아 무역규모는 연간 800억유로에 달한다.

업종별로는 서방 에너지 기업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9일(현지시간) “유럽의 에너지 부문 조인트벤처가 피해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영국 석유기업 BP는 러시아 국영 석유기업 로즈네프티 지분을 20%를 보유하고 있어 이번 제재로 막대한 피해를 볼 첫번째 다국적 기업으로 지목됐다. 석유분야 기술 공여가 금지되면서 BP의 북극해 시추도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이밖에 미국의 엑손모빌과 노르웨이 스탯오일, 이탈리아 국영에너지기업 에니(ENI)도 로즈네프트와 석유 탐사를 위한 조인트 벤처를 설립해 피해가 예상된다. 블룸버그통신은 “러시아 의존도가 큰 에너지 기업들의 러시아발 글로벌 매출이 4~6%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아직 충격을 판단하기는 시기상조라는 신중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르노자동차의 제롬 스톨 부회장은 “제재의 충격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르노자동차 20대 주주들은 “르노 등 유럽권 회사에 제재 충격이 얼마나 될지 판단하기는 너무 이르다”면서도 “러시아와 이해관계에 있는 기업 투자자들은 우려는 깊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이고르 세친 로즈네프트 대표(오른쪽), 밥 더들리 영국 BP 회장(왼족에서 두번째)이 지난해 3월 BP와 로즈네프트의 지분 교환 계약을 체결한 뒤 악수하고 있다.

▶푸틴 ‘강대강’ 맞불=서방의 옥죄기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내부단속을 강화하면서도 서방에 대한 보복성 조치로 ‘강대강’ 맞불작전을 구사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푸틴 대통령이 제재로 인한 후폭풍을 고려해 내셔널리즘(민족주의)과 친기업 유화정책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면서 내부 단속에 나설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 의회는 딜로이트, KPMG, 언스트앤영,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등 글로벌 ‘빅4’(Big 4) 회계기업과 보스턴컨설팅그룹, 맥킨지 등 2개 컨설팅기업에 대한 영업금지 법제화를 검토하고 있다.

FT는 스베르방크, 대외무역은행(VTB) 등이 제재를 받으면서 러시아 기업들도 그 영향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시아 은행들을 대변해주고 있는 법무법인 모간, 루이스&보키우스의 브루스 존슨은 FT에 “제재안이 주요 자금 공급원을 차단하고 있다”며 “미국과 유럽에서 은행의 자금공급이 차단되면 어디서 돈을 얻어 쓰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러시아중앙은행이 자금을 공급하면 금리가 인상되고 중국의 위안화나 홍콩, 싱가포르 달러가 대안이 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볼 때 충분치 않다고 지적했다.

모간스탠리에 따르면, 러시아 비금융권 국영기업이 1년 후 만기도래하는 대외채무는 410억달러에 달하고 국영은행들은 330억달러에 이른다. 개인은행은 200억달러, 비금융 사업체들의 대외채무는 670억달러다. 긴급한 채무 변제를 위한 자금조달이 불가능할 경우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다.

문제는 이번 제재로 푸틴에 자금을 대는 그의 ‘친구들’ 뿐만 아니라 기업 및 투자자들이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FT는 “러시아 기업들이 서방의 제재와 러시아의 고립에 우려를 표하고 있어 푸틴 대통령이 이들을 달래면서도 한편으론 민족주의자들의 편에 서서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친러세력에 대한 지원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적대국 정부의 요구에 따른 잘못된 자문 서비스로 러시아에 ‘실질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러시아 의회는 러시아를 ‘공격하는 국가들’(aggressor states)의 국내 법인 및 개인, 자회사 등의 회계감사나 법률자문, 기타 자문서비스 등을 금지하는 법안을 검토중이라고 FT는 전했다.

/ygm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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