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한지숙 기자] 서방의 고강도 금융 제재를 피해 러시아 기업들이 현금 재산을 아시아 은행으로 돌리고 있다.
지난달 31일(현재시간)부터 러시아 최대 상업은행인 스베르방크, 대외무역은행(VTB), 가스프롬방크, 국영 대외경제개발은행(VEB), 로셀크호즈방크 등 5개 은행의 유럽 금융시장 접근은 차단됐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보도 따르면 러시아 2대 이동통신사업자 메가폰은 보유 현금 재산의 40%를 홍콩 달러로 환전, 중국 은행에 예치했다. 나머지 60%는 자국 통화인 루블화로 남겨뒀다. 메가폰은 “시장 교란 시기에도 미국 달러의 효과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며 홍콩달러 매입 배경을 설명했다.
세계 최대 니켈ㆍ백금 생산업체인 노릴스크 니켈과 러시아 2위의 천연가스회사 노바텍 역시 달러 자산을 외환시장에 내놓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모스크바의 한 서방은행 현금관리 부문에서 근무하는 한 고위 은행가는 FT에“고객들로부터 자금을 홍콩달러로 바꿔 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고 있다”며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러시아 올리가리히(신흥부자)와 기업들 사이에서 미국과 EU의 금융 제재 영향으로돈줄이 묶일 것이란 우려감이 고조되고 있는 방증으로 풀이됐다.
특히 달러 환매에 나선 메가폰과 노릴스크 니켈, 노바텍 등 3사는 모두 서방의 1~3차 경제제재 대상 목록에서 빠진 기업들이어서 주목된다. 메가폰은 크렘린궁과 관계가 두터운 러시아 최고갑부 알리샤 유스마노프가 소유한 회사다. 유스마노프를 비롯해 노릴스크 니켈의 지분을 보유한 올리가리히 블라디미르 포타닌, 올레크 데리파스카 등은 이번 제재와는 무관한 인사들이다. 더욱이 메가폰은 해외와의 거래가 별로 없는 내수 기업이어서 이런 선제 대응이 의외라는 분석이 나온다.
찰리 로버트슨 르네상스캐피털 이코노미스트는 “내수에 집중된 메가폰 같은 기업이 그처럼 다량의 홍콩달러를 예치하는 선택을 했다는 게 놀랍다. 이는 이들이 최악의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다는 뜻이다”고 말했다.
한편 러시아 국영은행들은 지난해 전체 자금 수요 158억유로(약 22조원)의 거의 절반을 유럽 시장에서 조달했다. EU는 3개월 뒤 이번 경제제재의 효력을 검토하고, 제재 명단 등을 재조정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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