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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칼럼-김상복> ‘호모 코치쿠스’ 가 본 두 편의 연극
美 9·11테러로 개막한 21세기…재앙과 재난이 일상화된 시대
타인과 연대 통한 주체성 회복…‘협력과 함께함’ 이 극복의 열쇠



연극 ‘이바노프(Ivanovㆍ안톤 체홉 작)’에서 주인공 이바노프는 자살을 택했다. 그는 자살 전 “난 더 이상 산다는 것이 지친다. 집에 있는 것이 너무나 힘들고 괴로워. 해가 지기 시작하면 그 무언가가 내 영혼을 짓누르기 시작하고 내 기분은 그냥 이유 없이 우울하고. 그 이유는 아무도 몰라. 왜 그러는지 묻지도 마”라고 절규한다. 자신의 삶이 왜 이렇게 고단해졌는지 끝내 알지 못하고 죽음을 택한다.

귀족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부유한 유대인 집안의 딸 안나와 결혼했지만 아내는 5년만에 폐결핵을 앓고 죽는다. 가족을 버리고 자기를 택했던 아내이지만 그녀가 죽기도 전에 이바노프는 살길을 모색한다. 관료이며 귀족인 도지사 레베제프 부부에게 농장 경영자금으로 거액의 빚을 지고 갚을 길이 없자 그녀의 딸 샤샤와 결혼으로 빚을 해결하려고 한다. 샤샤와의 결혼은 빚 때문인가 사랑 때문인가 혼란스럽다. 오직 알아차린 것은 자기 삶의 주인이 자기가 아니라는 것 뿐. 19세기 말 봉건귀족 이바노프는 사라지는 봉건제의 꽁무니를 붙들고 있다. 광풍으로 밀려오는 근대 물결의 풍경을 바라볼 뿐 소화하지 못한다. 그냥 뒤쫓다가 요즘 말로 ‘소진 증후군’에 빠져들고 우울로 좌절한 것이다.

소설 ‘분노의 포도(존 스타인 백 저)’가 뜨거운 여름 연극으로 다시 탄생했다. 황금 같은 벼락경기를 만들어낸 1920년대 자본주의는 오래 못가 파산경기를 초래한다. 온 세상을 ‘100만 에이커를 가진 한 명의 지주를 위해 10만명이 굶주리는 황무지’로 만들어 버렸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세로로 줄 서서 위에서 아래의 피를 빠는 정글사회로 내몰린다.

재난과 가난, 은행의 착취에 삶의 뿌리가 뽑힌 조드 일가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을 찾듯 캘리포니아로 탈주한다. 가족은 살아남기 위해 연대하며 헤쳐나가지만 그들이 지나가는 66번 국도는 긴 암흑의 터널이다. 폭력과 패싸움과 파업투쟁에 굳건히 일관성을 유지하며 가족을 격려하는 어머니 모성만이 힘의 원천이요 미래를 볼 뿐이다. 가난한 사람만이 언제나 가난한 사람을 돕는다. 그 이유는 등장인물 톰의 대사를 통해 드러난다. “우리는 각자 따로만의 독특한 영혼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매우 큰 영혼에서 각자 한 조각씩 나눠가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자신이 갖고 있는 조각 영혼을 서로 퍼즐 맞춰 하나가 되는 길이 우리가 갈 길이라는 이야기다. 연극은 대지와 생명력 모성 리더십, 어머니의 결의에 찬 표정으로 막을 내리나 소설을 본 사람은 더 극적인 모습에 가슴이 떨린다. 허기와 고통으로 아이마저 사산한 샤론이 6일째 굶주린 노동자에게 자기 젖을 물리는 장면이 그것이다. 이를 통해 존 스타인 백의 생각은 인간은 자기 아닌 타자와 절대적으로 관계 맺고 도우며 자기 주체를 확립한다는 주장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와는 무엇이 다른가. 9ㆍ11 테러로 시작된 21세기는 지금까지 자연재해와 국지전쟁, 경제위기와 더불어 인간이 초래한 재난을 한 줄로 세운다면 평화 순간을 찾기 힘들다. 재앙과 재난이 일상화된 시대에 재앙과 재난 세대가 전 지구적으로 경험을 공유하며 15살로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재난세대’가 자라고 있다. 이들의 생존 방식에서 미래에서 오는 신호를 찾기는 쉽다. 사산 한 여인이 굶주린 자에게 젖을 물리듯 재앙과 재난에 생존하며 만들어지는 ‘협력과 함께함’의 경험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하여 만들어지는 ‘자기 삶의 주체화 체험’이다.

독일의 신경생물학자 요하임 바우어는 저서 ‘협력하는 유전자’에서 인간 유전자의 3가지 생물학적 원칙은 협력, 창의력, 커뮤니케이션이라 주장한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유전자의 일치가 99%에 가까워도 인간을 그들로부터 구별하는 것은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라는 것이다. 협력과 함께함, 타인과의 연대를 통한 주체성 회복. 이런 인류 어디 없는가. 그것이 바로 ‘호모 코치쿠스(Homo-coachcus)’다. 인간은 서로서로 코치하며 살아남는 동물이다. 이바노프는 죽고 샤론은 살아 남았다. 협력하고 함께하는 유전자만이 재난과 재앙시대를 넘어간다. 바야흐로 호모 코치쿠스의 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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