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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경찰청장 2년 임기와 경찰 독립, 맞나요?
[헤럴드경제=김기훈 기자] 결국 이성한 경찰청장이 2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1년 4개월여만에 자리를 물러나게 됐습니다.

이 청장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수사 과정의 부실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난 5일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이 청장은 이날 경찰청 기자실에 내려와 “제 소임이 여기 정도인 것 같다. 여러 가지 경찰이 책임질 문제가 많아 청장인 제가 끌어안고 떠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물론 이 청장이 언급한 책임은 가볍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유 씨 변사 사건의 경찰 초동수사가 부실해 사인 규명이 어려워진 것을 두고 책임론이 여론의 도마에 올랐습니다. 특히 전남 순천 송치재 별장에 비밀공간 가능성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도 경찰이 이를 묵살한 것으로 드러난 게 결정적이란 분석입니다.

이에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에서 부실수사가 국민의 불신을 키웠다며 “책임질 사람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경찰 수뇌부를 압박했습니다.

이 청장의 ‘자진사퇴’는 사실상 ‘경질’에 가까워보입니다. 이로써 이 청장은 2년 임기를 마처 채우지 못한 7번째 경찰청장이 됐습니다. 지난 2003년 경찰청장의 중임을 금지하되 임기 2년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경찰법 개정안이 통과된 이래 총 8명이 청장을 지냈습니다. 하지만 이 가운데 임기를 지킨 이는 이택순 전 청장 단 한 명뿐. 이 청장을 비롯한 7명의 경찰청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했습니다.

일선 경찰들은 부실 수사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면서도 청장 경질에 대해 마뜩지 않다는 반응입니다.

우선 유 씨 일가 수사의 주체였던 검찰은 왜 경찰청장 사퇴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지 않는지 푸념하고 있습니다. 애당초 유 씨 일가의 수사를 주도했던 것은 검찰이고 이들 부자가 도주한 뒤 행방이 묘연해지자 동원된 것이 경찰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검ㆍ경 간 정보공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음은 이미 수차례 지적된 바입니다.

게다가 검찰은 유 씨 부자 체포를 위해 경찰을 동원하며 체포 시 ‘특진’을 내걸어 경찰의 자존심에 상처를 낸 바 있습니다. 검찰과 경찰은 엄연히 다른 조직임에도 인사권마저 간섭하는 모양새로 비췄던 것입니다. 경찰 내부에선 “검찰이 경찰을 장기판의 졸(卒)로 본다”, “이젠 검찰이 경찰 승진까지 시켜주는구나” 등 냉소적 반응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이에 애초부터 도주자 수색과 체포에 전문화된 경찰이 유 씨 부자 수사를 맡았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많았습니다.

결론적으로 검ㆍ경 공조는 실패했고 그 책임을 지고 경찰청장은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하지만 검ㆍ경의 책임을 수평 저울에 달아본다면 검찰의 책임이 경찰보단 가벼울 순 없을 것이란 비판도 나옵니다.

또 근본적으로 ‘파리 목숨’처럼 가벼운 경찰청장 임기에 대한 회의감도 많습니다. 경찰청장이 갈릴 때마다 정치적 목적 아니냐는 따가운 시선이 있었습니다. 4대 권력기관 중 하나인 경찰을 장악하려는 정치권 탓에 임기제가 무력해지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의 ‘경찰청장 임기 2년 보장’ 공약도 한낱 물거품이 됐습니다. 앞서 김기용 전 청장 역시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전 정권 인물’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중도하차 한 바 있습니다.

이제 눈길은 강신명 경찰청장 내정자에게 쏠립니다. 강 내정자는 현 정권이 들어서자 청와대 사회안전비서관을 지낸 만큼 정부의 치안철학을 적극적으로 실천할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이에 이번 인사가 청와대가 경찰에 대한 장악력을 더욱 높이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경찰의 독립성을 위해서도 경찰청장의 2년 임기는 소중합니다.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임기보장은 독립성을 위한 도구일 뿐 목적이 돼서는 안 됩니다. 경찰청장의 임기는 정권의 신뢰로부터 나오는 게 아니라 국민의 신뢰로부터 나온다는 것, 정권이 아닌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경찰의 독립성도 보장된다는 것을 강 내정자와 경찰 수뇌부는 직시해야 합니다.

kih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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