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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길용 기자의 화식열전> 돈버는 지혜…조삼모사조사모삼
제자백가(諸子百家) 가운데 알쏭달쏭함의 백미(白眉)는 단연 장자(莊子)다. 제물편(齊物論) 조삼모사(朝三暮四) 고사도 곱씹을수록 맛이 다르다.

원숭이를 키우는 사람이 아침에 도토리를 주며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를 주겠다”고 하자 모든 원숭이들이 모두 화를 냈다. 그래서 “그러면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를 주겠다”고 하니, 원숭이들이 모두 기뻐했다.

어차피 하루에 모두 7개인데, 언뜻 원숭이들이 눈 앞의 숫자에만 급급한 듯 보인다. 하지만 시간에 따라 자산가치도 변한다. 위험(risk)도 다르다. 손에 쥔 4개와, 손에 쥘 4개는 분명 다르다. 원숭이가 오히려 영악한 것일 수도 있다.

장자는 내가 옳다고만 주장하지 않고 다른 입장도 옳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것을 ‘인시(因是)’라고 가르친다. 또 나도 옳고 세상도 동시에 옳은 경지를 ‘양행(兩行)’이라 했다.

국세청이 지난 해 일감몰아주기 증여세 자진신고를 받은 결과 전년대비 신고세액이 중소기업은 줄고, 대기업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때마침 주식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종목이 최태원 SK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SKC&C와 현대글로비스다. 연초 대비 주가가 각각 60.9%, 36%나 올랐다. 이들 종목은 한때 ‘일감 몰아주기’라며 세간의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일감 몰아주기를 두고 논쟁을 벌이자는 뜻이 아니다.

이유야 어쨌든 결과적으로 이들 종목에 투자한 이들은 수익이 짭짤하다. 정도야 총수 일가만 못하겠지만, 이들 기업이 투자한 덕분에 일반인들도 혜택을 본 게 분명하다. 장자의 표현을 빌리면 이들 투자자들은 ‘인시’를 실천한 셈이다.

이 관점에서 현 상태는 총수 일가의 이익이 곧 투자자의 이익이 되는 ‘양행’의 경지일 수 있다. 앞으로 상장할 제일모직(구 삼성에버랜드)이나 삼성SDS에서도 ‘양행’의 관점에서 수익기회를 노릴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수학에 위상기하학(topology)이란 분야가 있다. 평면 공간을 선 안과 선 밖으로 나눈다는 점에서 원과 사각형을 동상 또는 위상동형(位相同型)으로 보는 시각이다. 선을 깨뜨리지 않고 변형하면 원은 사각형이 되고, 사각형은 원이 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총수 일가의 지분은 어떤 형태로든 그 기업집단의 지배력과 ‘위상동형’이다.

돈 벌이가 중요해진 세상에서 도덕만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기(史記)를 집필한 사마천도 “세상을 등지고 바위굴에 사는 처사(處士)도 아니면서 오랫동안 가난하게 살면서 입으로 인의(仁義)만 외치는 자도 역시 부끄러운 사람들”이라고 꼬집었다. 자본시장에서 지배력과 경영권의 변형을 합법적으로 적극 활용하는 것도 ‘화식(貨殖)’의 지혜다.

홍길용 기자/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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