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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길용 기자의 화식열전> 한전땅 두고 ‘삼성不敗’ vs ‘현대必勝’
위ㆍ촉ㆍ오 삼국을 통일한 중국 서진(西晉) 때의 일이다. 거부(巨富) 석숭(石崇)과 왕개(王愷)는 누가 더 부자인지를 다툰다. 왕개가 맥아당으로 설거지를 하자 석숭은 백랍을 썼고, 왕개가 20km의 비단 장막을 치자 석숭은 25km짜리 비단장막을 만들었다. 왕개가 황제에게 하사받은 대형 산호를 자랑하자, 석숭은 이를 일부러 깨뜨리고 더 큰 산호 대여섯 개를 물어줘 기를 꺾었다. 모두 당시에는 귀하디 귀했던 물품들이다. 중국 역사에 이름난 부자가 숱하지만, 이같은 치열한(?) 경쟁 덕분에 1800여년 동안 이 둘의 이름은 부자의 대명사 노릇을 했다.

서울의 마지막 노른자위 땅이라는 삼성동 한국전력 본사 자리를 두고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이 제대로 맞붙을 모양이다. 양재동 본사가 비좁아 삼성동으로 천도(遷都)하려는 현대차그룹은 필승의 각오다. 부동산 투자라면 일가견 있는 삼성도 돈 될 게 분명한 서울의 마지막 대형 요지를 양보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특히 이번 경쟁은 3세 경영인인 이재용 부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의 자존심이 걸린 한판이기도 하다. 이병철-정주영 회장, 이건희-정몽구 회장의 지난 2대 동안에는 주로 다른 분야에서 간접 경쟁을 했지만, 3대째에는 정면 승부가 벌어지는 셈이다.

대부호의 대결이 세간의 이목을 끄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석ㆍ왕의 대결이 민생의 의욕을 떨어뜨리는 천박한 다툼이었다면, 이번 이ㆍ정의 대결은 국가경제에 도움이 될 생산적 경쟁이란 점에서 성격이 전혀 다르다. 인수전이 치열해질수록, 즉 인수가격이 높을수록 서울시와 정부는 더 많은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 또 개발을 위한 대규모 투자가 수반돼 지역 및 국가경제에도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하다. 물론 인수전의 승자는 상당한 재무적 부담을 이겨내야 한다. 이 점은 승부가 갈린 뒤 반드시 따져야 할 부분이다.

과잉투자의 부작용으로 외환위기를 겪은 후 우리 기업들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주로 국내보다는 글로벌 경쟁에 주력했다. 그런데 최근 각 산업의 융합이 활발해지며 국내 대기업간 경쟁을 피하기가 어렵게 됐다. 2차전지, 자동차부품, 에너지저장장치(ESS), 호텔 및 서비스 등은 대부분의 대기업 집단들이 공통으로 공을 들이는 분야다. 한전 부지는 시작일 뿐 앞으로 다른 분야에서도 우리 대기업간에 대결은 빈번해질 게 분명하다.

경쟁은 투자를 유발하고, 투자는 고용을 낳는다. 게다가 요즘 대기업간 경쟁은 글로벌 시장이 목표다. 서로를 죽이는 경쟁이 아니라, 서로에게 자극이 되는 경쟁이다. 과잉과 과열만 경계한다면 새로운 성장 프레임이 될 수도 있다. 경쟁 속 상생을 읽는 화식(貨殖)의 지혜를 길러야 할 때다.

홍길용 기자/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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