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데스크 칼럼-박승윤> 실패한 기업총수의 ‘영웅전’
중소 제조업체를 경영하는 친구가 있다. 한국과 중국에 공장을 두고 전 세계를 누비며 직접 영업을 한다. 이 친구가 수년전 자금이 제대로 돌지않아 흑자 도산의 위험에 빠진 적이 있다. 가족 친지들이 돈을 빌려주겠다고 했지만 이를 거절하고 거래업체를 쫓아다녔다. 천신만고 끝에 좌초 위기를 극복했다. 후일담을 들었다. 허튼 짓 안하고 진짜 열심히 일만 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벼랑 끝에 섰을 때 자탄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극복 이후 깨달은 주변 사람에 대한 사랑도 얘기했다.

신장섭 교수가 쓴 ‘김우중과의 대화’에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회한과 울분이 가득하다. 김 전 회장은 대그룹의 창업주중 몇 안되는 생존 인물이다. 세계 경영의 기치를 높이 든 그는 후배 기업인들은 물론 청년들에게도 우상이었다. 자본금 500만원의 의류 수출기업에서 출발해 전자와 자동차기업을 아우르는 재계 2위의 그룹으로 키웠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은 결과적으로 회사를 지켜내지 못한 ‘실패한’ 기업인이다. IMF체제라는 충격을 견뎌내지 못하고 대우그룹이 공중분해되면서 수십만명의 직원은 실직 등의 고통을 겪었다. 이를 수습하기 위해 막대한 국민 혈세도 투입됐다.

그래서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부제의 책을 읽는 내내 마음 한켠에 불편함이 있었다. 실패한 경영인의 ‘영웅전’을 읽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언제쯤 나올까’하며 기다리던 내용은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김 전 회장이 분석하는 대우 몰락의 내부 원인,철저한 자기 반성이다.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이 해체된 것은 당시 그를 밉게 보던 경제관료들이 돈 줄을 막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정부가 수출금융등을 정상적으로 지원했다면 충분히 살아날수 있었다고 항변한다. 이에 대해 당시 정책당국자들의 반박이 이어지면서 대우그룹의 몰락 원인을 놓고 논란이 재점화됐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은 정부의 책임을 묻는 한편으로 기업을 나락에 떨어지게 한 경영 판단의 오류, 내부 자금흐름의 왜곡 등도 담담히 밝혔어야 했다. 외부 여건이 어떻든 이를 극복하지 못한 경영자의 책임은 막중하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 시절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옛 현대그룹은 진짜 밉보여서 눈에 보이게 자금줄을 차단당했다. 그러나 당시 정 명예회장은 버텨냈다. 위기를 극복했기에 지금 현대자동차그룹은 세계 시장을 누비고 있다.

신 교수 말대로 김 전 회장의 세계경영은 대우 해체와 별개로 지금도 벤치마킹해야 할 유용한 경영전략이다. 다만 김 전 회장이 이를 제대로 전수하려면 ‘50 대 50 원칙’의 리스크 관리, 국제인맥 형성 노하우와 함께 자금 운용 실태도 밝힐 필요가 있다. 사실 세계경영이 그룹 해체에 이르게 했다는 지적의 가장 부분은 자금 운용의 불투명성이다. 많은 국민이 대우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김 전 회장의 사심없는 열정은 인정한다. 그러나 경영 실패를 외부 요인 탓으로 돌리는 회고록은 냉소주의만 부른다. 냉정하고 가감없는 자기 성찰이 기업인 김우중의 명예를 유지시켜 줄 것이다.

parksy@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