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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해창 기자의 세상읽기> 신해철 씨 죽음과 VIP신드롬
[헤럴드경제=황해창 선임기자]가수 신해철씨의 갑작스런 사망을 둘러싼 논란이 일파만파입니다. 고인의 시신에 대한 부검 결과는 의구심을 더해 주고 있습니다.

시신부검을 맡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은 3일 부검결과를 공개했습니다. 그런데 당초 알려졌던 소장 쪽 천공(구멍) 외에도 심장을 둘러싸고 있는 보호막인 심낭에서도 천공이 추가로 발견됐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신 씨의 사인은 두 개의 천공이 복막염과 심낭염을 유발했고, 이로 인해 결국 폐혈증이 발생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 겁니다.

전문가들의 발표내용을 좀 더 들여다보면, 횡격막 좌측 부위 심낭에서 0.3cm 가량의 천공이새로 발견됐는데, 이 천공이 지난 17일 신 씨에 대한 S병원의 장협착 수술 부위와 인접한 것이라고 합니다. 깨와 같은 음식물 이물질이 발견된 것은 수술이나 의료 행위 중에 생기는 의인성(醫因性) 천공이 맞다는 겁니다. 

故 신해철 씨 빈소

기자는 간밤 모 방송사 뉴스를 통해 신 씨에 대한 병원 기록을 볼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통증이 심해 소리 지르고 발로 병원집기를 걷어차는 등 소란스러웠던 일이 며칠째 한 곳에서 반복됐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위중한 상황에서 문제점을 제때 잡아 내지 못한 겁니다.

국과수는 다만 천공이 생긴 시점이 언제인지 등은 진료기록부나 관련자들의 진술 등을 종합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좀 더 과학적인 수사가 진행돼야 천공이 왜 발생했는지 밝혀질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故 신해철 씨 영결식

이쯤에서 기자는 몇 년 전 실제로 경험해 알고 있던 VIP신드롬(증후군)이란 단어를 떠올려 봅니다. 의사들이 혈연이나 연인관계를 포함한 특수 환자들을 진료할 때 큰 부담을 느낀다는 얘깁니다. 여기에는 존경하는 은사도 친한 친구도 아주 유명한 인사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들을 통해 소개받은 환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수술과정에서 지나치게 잘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철저하게 진행해야 할 수술과정에 혼란을 겪은 나머지 치명적인 결함을 연출하고 만다는 겁니다. 심지어 손을 떨기도 한다는 군요. 다른 한편으로는 불필요할 정도로 철두철미한 수술과정을 너무 잘 아는 사이라서 불편을 덜어 준답시고 생략하는 과정에서 또 문제를 야기하고 만다고 합니다.

어떤 경우든 괜찮으면 다행이지만 문제가 불거지면 생명과 직결되고 맙니다. 비난과 원망은 차치하고서라도 걷잡을 수 없고 돌이킬 수 없는 낭패에 휩쓸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故 신해철 씨 영정

실명을 밝히긴 어렵습니다만, 10여전 금융계 최고위층 인사가 의사 아들한테 치료받다 못 깨어나 그길로 세상을 뜬 사례를 기자는 알고 있습니다. 듣기로는 이 뿐만이 아닙니다. 어느 한 내과 전문의는 아내가 늘 속이 더부룩하다고 했지만 “약 타 먹어”, “병원 가 봐”라고 했을 뿐 직접 진찰한번 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속사정을 모른 그 아내는 몹시 야속했지만 시간이 흘러도 마찬가지였는데 어느 날 그 아내, 위암 말기를 선고 받고 그리 멀지 않은 훗날 세상을 뜹니다. 의료계에선 충분이 있을 수 있는 얘기라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실제로 10여 년 기자 가족도 겪은 일입니다. 기자의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 때 일입니다. 편도선 비대증으로 자주 염증을 유발해 고열에 시달리던 터였습니다. 가족 단골의사로 잘 알게 된 동네 인후비과 병원장이 딱한 나머지 자신의 수재자 의사를 소개합니다. 서울의 모 대학병원입니다. 

故 신해철 씨 생전 모습

결과부터 말하면, 수술이 잘 못돼 두 번 수술을 한 겁니다. 지혈에 어려움이 있어 다른 문제가 있나 싶었는데 과도한 절제를 포함해 뒷마무리에 상당한 문제가 유발됐다는 게 2차 수술 의사의 말이었습니다.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1차 수술 후 퇴원해 통원 치료를 받던 중 갑자기 출혈이 심해 119구급대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잠에 곯아떨어진 상황에서 출혈이 돼 목안에 피가 응고되면 질식사 위험이 농후하다는 주의사항을 떠올리면 아직도 닭살이 돋을 정도로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그 의사, 초년병이었습니다. 아마도 존경하는 은사님의 간곡한 부탁에 막중한 사명감 또는 부담을 느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또 하나, 막 결혼식을 올렸지만 시간에 쫓기다 기자의 아들을 수술하고 곧장 해외로 허니문을 떠난 처지였습니다. 압박감과 들뜸이 혼재된 부작용의 상승작용이라고나 할까요.

아무튼 우리 사회에서 의사들은 성층권으로 분류됩니다. 특별한 사람들인 것이지요. 왜 그럴까요. 딸을 햇병아리 의사로 둔 지인의 말입니다. “공부하는 과정을 보면 왜 의사들이 특별한 대접(보수)을 받아야 하는지 답이 나온다”는 겁니다. 안 해보면 말 말고 안보면 거들지도 말라는 겁니다. 한마디로 처절한 모양입니다. 그들의 애환 역시 위상 못지않게 크나 봅니다.

어찌됐건 신해철 씨의 사망 원인은 곧 밝혀지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그의 영면은 현실이 돼 버렸습니다. 국과수가 밝힌 의인성이란 의료행위에 기인한 것이라는 뜻인 만큼 신 씨의 사망을 둘러싼 시시비비(是是非非)는 불가피해 보입니다.

유가족들은 신 씨의 승낙 없이 병원이 ‘위 밴드(위 축소) 수술’을 했으며 장유착이라는 부작용을 은폐하려다 일을 그르쳤다는 주장이지만 해당 병원은 그런 적이 없으며 이번 일 역시 정상적인 의료행위였다고 맞섭니다.

매우 민감한 사안이지만 VIP신드롬을 꺼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꽤 유명한 병원이라면, 담당 의사가 명의로 소문났고 방송출연 요청도 자주 받는다면? 한번 쯤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그럴수록 의욕이 넘치기 마련이고 부담 또한 가중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유명연예인들이 자주 찾는 곳이라면 더 할 것입니다. 만약 성공할 경우 문제의 (비만해결을 위한) 수술에 대한 홍보효과는 상상을 초월할지 모를 일이고요.

기자로선 의료분야에 문외한인데다 법적분란까지 비춰지는 사안인지라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되도록 언어선택에 유의하고 주간적인 판단을 삼갔습니다만, 부족합니다. 그렇더라도 색다르게 짚어보자는 의미에서 글을 올려봅니다. 

/hchw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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