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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방기마민족의 얼 살아있는 ‘신장웨이우얼’
우루무치에서 시안까지 3000여㎞
북방 기마민족의 유서 깊은 터전
한민족 역사·삶과도 무관치 않아
한반도·유럽 잇는 新실크로드 기대




지난 10월 ‘신장’의 우루무치에서 시안(西安)에 이르는 약 3000㎞의 실크로드를 다녀왔다. 열흘간 버스ㆍ기차를 타고 황량한 벌판과 사막을 가로지르면서 북방기마유목민의 삶과 역사를 되새기는 기회를 가졌다.

신장웨이우얼(新疆維吾爾)은 중국의 성급 자치구다. 인구 약 2200만명, 면적 166만㎢(남한의 약 16.7배)로 중국의 가장 큰 성이고 수도는 우루무치다. 중국 북서부에 자리잡은 이 지역은 몽골,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 등 8개 국가와 5400㎞의 국경을 접하고 있다. 위구르족을 비롯한 40여개 이민족이 살고 있고 그들의 비중은 60%에 달한다. 특히 위구르족은 약 900만명에 달해 중국의 위구르인들은 거의 이 지역에 살고 있다. 과거 중국에서는 서역(西域)이라고 불리웠고, 청나라 건륭제때 ‘새로운 강역’이라 하여 신장이라 명명했다. 그러나 토착 위구르인들은 ‘동투르키스탄(동쪽에 있는 투르크인의 나라)’이라 부른다.

신장은 실크로드의 중심축이다. 시안에서 텐수이, 란저우, 우웨이, 장예를 지나면 만리장성의 서단 제1관문으로, 중국이 강성했을 당시 서쪽 경계선 지역이었던 자위관을 만난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더 가면 둔황이 나타나고 이어 신장을 만나게 된다. 란저우에서 둔황까지 1100㎞는 황량한 사막과 초원의 연속이나 치렌산맥과 고비사막 사이에 하서회랑(河西回廊)이라는 오아시스 지대가 있어 신장지역과 연결하고 있다.

신장의 역사는 기원전 아주 오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BC 2000년경 이미 청동기를 사용한 흔적이 있고, 유라시아스텝 지역에서 발견되는 기마유목민의 전통유물 형태인 동물문양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처럼 오랜 역사의 이 지역은 북방기마유목민이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곳으로, 흉노ㆍ돌궐ㆍ몽골ㆍ여진 등이 활약했다. 기원전 오손, 월지 등이 출현했다가 BC 2세기경부터 흉노가 장악했다. 이후 한나라 무제는 서역 개척에 나섰고 BC 60년경 오아시스 실크로드가 열렸다. 한나라 붕괴 후 기마유목국가인 유연-에프탈에 이어 돌궐이 이 지역의 패권을 차지했다. 수나라에 이어 중국을 통일한 당나라는 서역정벌전쟁을 벌여 쿠차에 안서도호부를 설치하고 다시 실크로드의 주인공이 됐다.

당나라 이후 몽골초원에서 남하한 위구르제국이 지배했고 키르키즈에 멸망한 후에도 위구르인들이 여러 왕국을 유지했다. 13세기 초 칭기스칸의 몽골제국이 들어섰고 이후 오이라트, 키르키즈, 카자흐족의 왕국이 세워졌다. 1750년대에 여진족의 청나라가 이곳을 정복했고, 청의 지배가 느슨해지면서 위구르인 등의 독립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나 1878년 청나라가 재정복했다. 신해혁명 후 다시 독립운동이 재개됐고, 스탈린의 소련이 남하해 이 지역의 세력 다툼에 개입하면서 위구르인 등은 1930년대 및 40년대에 한때 동투르키스탄공화국을 건국했으나 1949년 중국의 인민해방군이 이 지역을 다시 장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는 독립요구 목소리가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신장은 북방 기마유목민의 오랜 활동 무대인 동시에 한민족의 삶의 흐름과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은 곳이다. 동서를 연결하는 실크로드를 통해 한반도와 유럽지역까지 교류가 이어져 왔다. 고구려 유민출신인 고선지는 실크로드를 개척했고, 신라시대에 혜초는 해상통로로 인도로 구법여행을 떠났다가 중앙아시아를 거쳐 실크로드를 통해 장안으로 돌아와 ‘왕오천축국전’이라는 불멸의 여행기를 남겼다. 신장이 연결한 실크로드를 통해 이루어진 교역의 흔적을 많은 유적과 유물에서 찾을 수 있다. 한반도에서 스텝지역과 실크로드를 통해 유럽에 이르는 새로운 교류와 협력의 큰 틀이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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