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겉보기에 그것은 그저 예쁜 유리병에 담긴 벌꿀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꿀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어떤 건물의 옥상에는 푸른 정원이 생겼고, 야산의 밤나무는 밤송이를 더 풍성하게 매달 수 있게 됐으며, 아이들은 꿀벌이 부지런히 꽃송이를 넘나드는 풍경을 두 눈 속에 담을 수 있게 됐다. 꿀 하나가 이 도시를 다시 디자인해 버린 것이다.

헤럴드디자인포럼2014의 부대행사로 열리고 있는 헤럴드디자인마켓에는 이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밑바닥에서부터 바꿔놓을 잠재력을 지닌 창의적인 제품들이 즐비했다. 단순한 미적 경험 이상의 가치를 담은 제품들을 본 관객들은 예쁜 외관의 제품이 아닌 그 디자인이 바꿔놓을 세상을 위해 값을 치렀다.

‘헤럴드디자인포럼2014’의 부대행사로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헤럴드디자인마켓에 수많은 관람객들이 몰려 새로운 가치와 라이프 스타일을 담은 창의적인 디자인 제품을 둘러보고 있다. 이 디자인마켓은 30일까지 열린다. 사진=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특히 눈길을 끌었던 것은 서울에서 도시양봉사업을 하고 있는 ‘어반비즈 서울’. 도시양봉 동호회를 하던 이들이 지난해 8월 세계적으로 벌이 멸종하고 있는 현상에 경각심을 느껴 만든 사회적 기업이다.


어반비즈가 운영하는 양봉장은 용산 노들섬, 서대문구청, 서울대학교 캠퍼스, 서울시청 남산별관 등 서울 곳곳에 있다. 이 양봉장에서 160만 마리의 벌들이 이 도시 곳곳을 날아다니며 모은 꿀이 제품화되어 팔린다.


어반비즈 관계자는 다만 꿀을 많이 생산해서 판매하는 것이 주 목적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벌이 잘 살 수 있는 환경은 사람도 잘 살 수 있는 환경”이라며 “도시 환경을 바꾸자는 것을 주 목적으로 교육 사업에 더 힘을 쏟고 있다”고 설명했다. 어반비즈로부터 교육을 받은 도시양봉가는 300여 명에 이르고, 전업으로 양봉을 시작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자폐성 장애 학생들이 그린 그림으로 각종 문구와 도자기 등을 생산하는 ‘오티스타(자폐증이라는 뜻의 autism+star)’도 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특수교육을 전공하고 있는 이화여자대 이소현 교수가 주축이 돼 만든 ‘오티스타’는 자폐인들이 시각적인 능력에 있어서 탁월하다는 것에서 착안한 사회적 기업이다.

수익금은 자폐인들의 독립생활과 사회통합을 위한 지원기금으로 사용된다. 실제 회사를 운영한 뒤 스스로를 가둬버린 아이들이 조금씩 바깥 세상으로 나오고 있다. 4명의 자폐인이 오티스타에 취업했고, 이를 후원하는 SK그룹의 계열사에 취직한 사례도 있다.


이 교수는 “우리 역할은 자폐아들이 사회에 잘 적응하고 기여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디딤돌”이라며 “경영도 중요하지만 자폐를 품고 자폐인이 사회구성원으로 지지하고 후원할 수 있는 회사가 되는 게 궁극적 목표”라고 말했다.

디자이너들이 만든 제품들 중 이른바 ‘하자’가 있는 제품들만 모아서 판매하는 ‘하자(Haja) 프로젝트’는 유독 저렴한 가격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전혀 흠이 없어 보이는 물건들이지만, 깐깐한 디자이너들의 눈엔 ‘B급’인 제품들만 20~50% 저렴하게 판매하기 때문이다. 올해 초 여러 업체가 손을 잡고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상설 매장 없이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팝업스토어 형식으로 매장을 연다. 수익의 50%는 학대 피해를 입은 아동을 지원하는 데 쓰이고 있다.


프로젝트 관계자 유병석 씨는 “문제가 있는 제품을 폐기하지 않기 때문에 업체로서는 비용을 줄일 수 있고, 환경도 지킬 수 있는 길이 되는 것 같아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헤럴드디자인포럼본부 김예지 매니저는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좋은 제품을 내놓고도 유통채널을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 위주로 입점업체를 선정했다”며 “한국MD협회와 중소기업진흥공단의 디자인ㆍ식품 관련 구매 담당자들도 좋은 업체를 발굴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했다”고 말했다.

총 60여개의 디자인ㆍ식품 업체가 참여한 이번 디자인마켓은 오는 30일까지 진행된다. 마켓 참관객은 설문조사에 응할 경우 오리온 ‘마켓오’가 새롭게 내놓은 제품 ‘리얼쿠키’를 맛볼 수 있다. 또 마켓이 열리는 기간에는, 농촌과 도시의 상생방안을 모색하는 시도연구소(시골과 도시를 잇는 연구소)의 ‘브랜딩 제안’(27일), 박진 어반비즈 대표의 ‘도시양봉 강연’(28일)과 커피로스팅 전문기업 알레그리아와 앤트러사이트의 ‘커피 토크’(29일), 오티스타 이소현 교수의 ‘함께 나누는 라이프스타일 제안’(29일), 캘리그라피 프로젝트팀 사공공공(4000)의 ‘캘리그라피 시연회’(30일) 등 다채로운 이벤트도 준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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