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Let‘s Go ASEAN+Korea] ①다문화 印尼, 놀라운 유산, 감동의 포용력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세계 4위 인구의 인도네시아가 주도하는 ASEAN(동남아국가연합)과 대한민국 사이의 우정이 올해 12월 부산 회담을 계기로 부쩍 돈독해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서민 출신인 조코 위도도(Joko Widodo)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지난 11일 정상회담을 통해 중요한 협력 파트너임을 재확인하고 양국의 유대가 심층 발전되도록 노력하자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본부를 두고 있는 ASEAN은 지난달 11월16일 미얀마에서 열린 ASEAN+3 회담을 마친 후, 한국ㆍ중국ㆍ일본 기자들의 동남아 국가 취재를 요청했다. 한국과 중국은 흔쾌히 응했고, 일본 언론은 불참했다.

▶‘+3’ ASEAN에 뭘 했나?=승객의 상태를 수시 순찰로 살피는 가루다인도네시아(GA)항공 승무원들의 친절함을 느끼면서, 자카르타를 경유해 인도네시아 관광의 보고(寶庫), 자바섬 요그야카르타(일명 족자카르타, 족자)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는, ASEAN 창설 30주년이 지난 뒤에야 뒤늦게 합류한 ‘+3’, 한국,중국,일본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ASEAN에 과연 무엇을 기여했는지, 혹시 식민지 역사로 점철된 동남아를 상대로, 상생을 위한 지원 보다는 힘 있는 나라 행세만 한 건 아닌지…. 어떤 형태이든 나라를 대표한다는 긴장감, 지금 그들에게 무엇이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들이 교차했다.


자바섬은 70만년전 것으로 보이는 인류 화석이 발견돼 인류 출현지로서 최고참 지역이고, 인구 2억5360만명인 이 나라 정치와 경제, 정신과 문화 중심지이다. 남ㆍ북한 합친 땅 보다 2~3배 큰 섬 3개, 한반도 보다 약간 작은 섬 2개, 제주의 3배인 발리섬을 비롯해 1만7504개의 섬으로 이뤄진 인도네시아는 세계 문화의 백화점이다.

▶정신ㆍ문화ㆍ웰빙의 중심지 요그야카르타= 200여개 인종이 공존하며, 동서 길이는 런던~모스크바, 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뉴욕 거리와 맞먹는다. 미국(USA)처럼 ‘United iSlands of IndonesiA’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동ㆍ서양 문화 ▷이슬람ㆍ힌두ㆍ불교ㆍ크리스트교 문화 ▷인도ㆍ중국ㆍ유럽 음식에다 ▷네덜란드ㆍ영국ㆍ미국ㆍ일본 등 6개국이 개입한 열강의 패권 다툼과 자주독립 투쟁 등 세계 역사 문화의 다양한 양상이 모여있는 지구촌 축소판이다. 이유는 바로 2000년간 세계 문물이 오가던 ‘V’자형 해상실크로드의 변곡점이었기 때문이다. 서북쪽으로는 로마와 콘스탄티노플, 인도 뭄바이를 연결하고, 동북쪽으로는 베트남 호이안, 중국 광저우, 한국을 연결하면서 문화가 넘쳐났고, 때론 외침에 직면하기도 했다.


“200여인종에 2만개 섬이라니…바람 잘 날 없겠네”라는 한국인의 선입견은 그러나 3박4일 여행에 나선지 얼마되지 않아 깨진다.

▶해상 실크로드의 변곡점, 다문화 인도네시아의 강점=무엇보다 사람이 좋았다. 여행 중 숱하게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불가사의 유적들도 모두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이니 좋은 심성에 지혜까지 느낄 수 있었다.

GA 승무원의 친절을 뒤로한 채, 인도네시아 5번째 도시이자 문화,교육,독립정신의 메카, 요그야카르타 공항에서 만난 마대(62)씨는 둘째딸을 한국에 유학시킨 영어 교사 출신 가이드이다. 그는 페허에서 출발한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통해 고도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을 인도네시아의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믿고 여행업에 진출했으며, 10여년 독학 끝에 한국어를 마스터한 사람이다.


친절하고 지혜로우며, 예쁘기까지 한 인도네시아 관광부 공무원 디아(Diah)와 하나(Hanna), ‘이웃집 아저씨’ 같은 마대의 안내로, 요그야카르타 북서쪽 42㎞ 지점의 보로부두르 불교 사원에 도착했을 때, 자바 서부지방 세랑(Serang) 인근 칠레곤(Cilegon)고교생들이 체험학습을 하고 있었다. 광양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칠레곤에는 포스코 투자 공장이 있다. 인니의 포항을 꿈꾸는 도시다.

몇몇 학생이 다가오길래 ‘사진찍어 달라’는 줄 알고 카메라를 받으려 했더니, “함께 찍자”고 한다. ‘한류’팬인 그들은 취재팀의 대화를 듣고 한국인임을 알아채고는 기념촬영을 요청했던 것이다. “오빤 강남스타일”이라고 해도 웃고, “땡큐, 인도네시아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도 ‘꺄르르’ 웃음 짓는다.


▶100년 복원으로 재탄생한 집념의 보로부두르= 이런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친근한 풍경은 세계 7대 불가사의인 이 사원의 웅장함과 건축물에 담긴 속뜻을 이해하고, 가로X세로 각 123m의 피라미드 구조물을 돌고돌아 다시 위쪽으로 720계단을 오르며 작은 석굴암 72개를 섭렵하는 2시간여 동안 계속 이어졌다. 미국인도 네덜란드인도 그들의 스스럼없는 우정 표현에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디아,하나,마대도 그랬고, 칠레곤고교생들도 그렇고, 이 곳 사람들은 손님을 기분좋게 하는 비법이 있는 것 같다.

이 사원은 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1200년전 100만개나 되는 중대형 벽돌을 산꼭대기에 쌓아올린 힘, 벽 마다 정교히 아로새겨진 1500여개 부조를 만들어낸 예술혼은 대체 어디에서 나올까. 눈을 의심할 정도의 우수한 문화예술 능력을 실감하는 것은 여기에 그치치 않았다.


100년이나 이어진 복원노력은 감동적이었다. 1814년 네덜란드 총독부가 발견한 이후, 1907년부터 2010년까지 복원노력이 이어졌다. 1911년 1차 복원 완료, 1925년 2차 계획 수립, 1975~1985년 2차 복원, 2010년 화산폭발에 따른 재정비 등이 이뤄지는 동안 수많은 자연재해가 이어져 치밀하게 전략을 수립하고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이뤄낸 결실이었다. 증조(曾祖)의 뜻을 4대손(孫)이 완성하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집념, 문화유산에 대한 강한 애정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보로부두르는 12세기 초 건축된 푸난(扶南:부남=캄보디아)국 앙코르와트 건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불가사의한 축조술, 1200살 프람바난 힌두사원= 요그야카르타 동쪽 17㎞ 지점에 있는 프람바난 힌두사원은 9세기 중엽에 건립된 것으로 조각의 정교함과 6개 항아리형 첨탑의 매력적인 균형미가 돋보인다.

여기서 두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믿기 어려운 건축물리학이다. 정약용 선생이 수원성을 짓기 위해 거중기를 발명하기 900년전,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이집트 피라미드에 쓰인 벽돌 보다 큰, 길이 10m짜리 대형암석을 수십m 높이까지 올려 프람바난을 축조했던 것이다.

인도네시아 지도층과 통치권자가 보여준 종교 간 관용도 놀랍다. 무슬림 국가로서의 명맥이 수백년 이어지고 국민 87%가 무슬림이지만, 이 힌두교 사원과 보로부두르 불탑(佛塔)을 최고 문화재로서 대우하고 장기간 보존 복원을 추진했다. 심지어 나라를 상징하는 표장(標章)에 인구 7%에 불과한 힌두교의 상징물을 쓰고 있다. 비슈누(유지 보호의 신), 브라만(창조의 신), 시바(파괴의 신) 등 3대 힌두교 신 중에서 비슈누의 육체에 해당하는 ‘가루다’(인간의 모습을 한 독수리)를 국장(國章)으로 삼고 있다. 힌두교의 시바는 다른 종교에서는 볼수 없는 ‘창조적 파괴’의 덕목을 가르친다. 돌이키기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을때 ‘과감하게 다시 시작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 힌두의 상징물을 나라의 표장으로 쓴 무슬림 지도자들의 대범한 관용도 ‘관념의 창조적 파괴’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인도네시아어로 종교는 아가마(Agama), 관습은 아닷(Adat)이다. 그들은 “아가마는 바다로부터, 아닷은 산으로부터 왔다”고 한다. 믿고 따르는 모든 것의 원천을 바다와 산으로 여기는 자세에서도 그들의 순수하면서도 ‘통 큰’ 마음을 느낄수 있다.


▶외국인을 감동시키는 그들의 우정=신성한 성지에서도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외국인과 친구하기’는 이어졌다. 섭씨 30도가 넘는 날씨에도 머리에 무슬림 머플러를 맨 30대 아줌마 7~8명이 한국에서 온 50대 아저씨들에게 ‘함께 사진찍자’고 하니 황송스럽다. 중학생 아이들도 배운지 얼마되지 않은 영어로 “반갑다”고 인사하며 ‘강남스타일’ 말춤 한자락을 선보이며 친분을 과시한다.

일본이 인도네시아를 잠시 점령했을 때 강제징집-징용 당한 한국인들에게 악역을 많이 맡겼고, 현지인들이 일본을 비난하면 “일본이 아니라 한국인들이 그랬다”고 변명하는 바람에 해방직후 잠시나마 한국인들에 대한 인상은 좋지 않았다고 마대씨는 전한다. 하지만 그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금방 훌훌 털고 친해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인도네시아인들의 쿨한 모습이 다문화 평화 공존의 첫 출발점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요그야카르타 시내에 있는 슐탄왕궁에서도, ‘솔로’라고 불리는 수라카르타의 망꾸너가란 궁전에서도,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친절은 감동스럽게 이어졌다. 망꾸너가란 궁에서는 초등학생 서너명에게 “나 한국에서 왔는데, 같이 찍을래?”라고 했다가, 체험학습을 온 어린이 수십명 모두에게 둘러싸이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인니(印尼)) 무슬림지도자의 포용과 나눔=권력을 과시하지 않고 국민과 편하게 마주할 것 같이 화려하지 않으며 수수하게 만들어진 슐탄왕궁에서는 때마침 궁중의례 연주곡 공연이 있었다. 전통타악기는 우리의 것을 닮았다. 편경이나 편종을 닮은 악기도 눈에 띄었고, ‘공’은 ‘징’을 닮았다. 우리나라 ‘징’이 첼로라면 징 보다 3배가량 큰 ‘공’은 묵직한 소리를 내는 더블베이스라 하겠다. 그릇모양의 타악기는 우리의 꽹가리 노릇을 했다.


누가 먼저랄 것이 없다. 문화는 이처럼 돌고돌거나 사람 있는 곳이면 어디든 동시다발적으로 비슷한 것이 창출된다. 일부 서방 국가들이 정치적으로 악용한 서구문화 우월주의는 나쁜 마음으로 만들어낸 것이지, 태초에 더 잘난 나라란 없다. 서구인들은 태평양을 횡단하는 항해기술을 자기네가 10세기 이후에 가장 먼저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미 기원전부터 인도네시아 동쪽 폴리네시아와 남미 원주민들이 고도의 항해술로 태평양을 오가며 동남아시아와 남미를 잇고 있었음을 ‘콘티키(Kon-Tiki)호’가 입증한 바 있다.


무슬림의 생활신조는 나눔과 절제이다. 이익을 예금자와 나누는 이슬람은행은 이곳 무슬림에게 친구같은 존재이다. 슐탄 왕궁의 내관들은 모두 은퇴한 자원봉사자들이다. 후손들을 여럿 둔 건강한 몸들이다. 그들은 통치자로부터 베품과 나눔을 받은 만큼, 한 푼도 받지 않고 문화유산의 수호를 위해 청소하고 토론하며 실천한다.

▶엄청난 잠재력…인프라 투자는 시급= 독립투쟁의 상대국인 네덜란드 문화와 자바 문화가 섞인 망꾸너가란 궁전에서도 인도네시아의 포용력을 확인할 수 있다. 이곳에는 시민과 관광객을 위한 전통춤 나눔 강습이 매일 이뤄진다.

한국에 1만7000개 지역, 200여 인종이 있었다면 얼마나 많이 싸우고 할퀴었을까. 한국 취재진은 인도네시아에서 화합과 용서를 넘는 상호 존중과 포용 정신을 똑똑히 목격했다. 이곳에 오는 비행기안에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했던 나의 오만함도 부끄럽다. 내가 배우고 얻은 것이 너무 많으니까.


먼저 다가가는 ‘순수의 열정’, 포용과 나눔은 불가사의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만들고, 평화로운 다문화 사회를 유지 발전시키는 큰 원동력인 것 같다. 매년 6~7%를 기록하는 고도 경제성장률로 미뤄, 도로ㆍ항만ㆍ교육ㆍ의료 인프라를 위한 투자와 지원이 이뤄진다면 인도네시아는 머지않아 아시아의 ’빅 드래곤‘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여행의 3대 요소는 장소, 사람, 음식이다. 놀라운 문화 유산과 복원의 집념, 언제든 베풀고 감싸안으려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정(情), 건강과 맛을 함께 생각하는 웰빙 레시피와 지구촌 음식문화의 백화점 등 인도네시아는 모든 것을 갖추었다.

못생긴 한국 아저씨의 옷 소매에 스스럼없이 매달리던 인도네시아 청소년과 활달하던 무슬림 아줌마들, 버스를 기다리며 휴대기기를 만지던 히잡 쓴 샐러리 우먼들, 애교와 지혜가 넘치던 디아와 하나, 동네 형님 같았던 마대씨, 그들이 몹시 보고싶다. 이 그리움은 내 마음 한켠을 오래도록 아프게 할 것 같다. “아빠 까바르?(Apa kabar:안녕하시지요) 친구들!”

/abc@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