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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경찰의 蘭’에 대한 곱지않은 시선
서경원 사회부


지난 6일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경찰청 본관 로비에 진풍경이 벌어졌다. 수십개의 축하 난들이 여러 행렬로 나뉘어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각각의 난에는 보내는 사람의 이름과 받는 사람의 이름이 적힌 메모가 붙어 있었다.

이날은 다름 아닌 경찰 승진자가 발표된 날이었다. 경찰청은 지난 5~6일 이틀간에 걸쳐 총경(86명) 및 경정 이하(136명) 인사를 단행했다. 이 중 본청 근무자들도 다수 포함돼 있는데, 이 난들은 바로 이들을 축하하기 위해 발표되기가 무섭게 도착한 것들이었다.

어림잡아도 70~80개 이상 돼 보이는 각종 난들은 경무국, 정보국, 경비국, 생활안전국, 외사국, 감사관 등 경찰청 국·관실별 팻말 앞에 일렬로 줄을 서서 수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배송업체 관계자들은 쉴새 없이 ‘승진을 축하합니다’라고 적힌 난 화분을 가져와 줄을 세운 뒤 휴대폰 인증 사진을 찍었고, 연락을 받은 각 국·관실 관계자들은 손수레를 가져와 부지런히 난을 실어 날랐다.

메모에 적힌 수신인은 본청 승진자들이었고, 발신인에는 지방경찰청·서 관계자나 ‘의O회’, ‘국O회’, ‘까O회’ 등 각종 친목단체도 들어가 있었다. 소속을 밝히지 않은 개인 이름도 많았고, 유명 대학원 이름도 보였다. 심지어 모 대기업의 노조위원장이나 한 지방도시의 시장 이름까지 보였다.

경찰청 관계자는 “승진자를 축하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분들이 자발적으로 보내온 난들”이라고 해명했다.

축하 차원에서 보낸 난 선물을 누가 뭐라 하겠냐만, 갑질 논란으로 우리 사회가 홍역을 앓고 있는 시점에서 연출된 이런 모습은 경찰의 힘을 ‘과시’하는 것처럼 보여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특히 최근 땅콩회항 사건, 백화점 모녀 사건 등의 수사 주체인 경찰이 스스로 갑질의 주체처럼 비칠 수도 있다.

국가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은 항상 국민들 눈앞에 있는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힘 있는 자들의 각종 횡포 소식으로 국민들 가슴에 생긴 상처를 싸매주기 위해서라도 크든 작든 매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오얏나무 밑에선 갓도 고쳐쓰지 말란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의 자세가 필요하다.

gi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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