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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면제에서 투신기도까지…가족살해한 비정한 아버지의 한 달
[헤럴드경제=서지혜 기자] 13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의 한 고급 아파트 입구, 호송차에서 갈색 점퍼로 온 몸을 감싸고 고개를 숙인 40대의 남성이 내렸다. 남성은 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강모(48) 씨. 누구보다 단란해보였던 가정의 가장이었던 강 씨는 지난 6일 자신의 집에서 아내와 두 딸을 죽인 후 자살을 시도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이 날 현장검증을 위해 9시30분께 서울 서초경찰서를 출발해 10시께 자신이 거주하던 아파트에 도착한 강 씨는 취재진을 뒤로 하고 엘레베이터를 탔다. 현장검증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중산층 이상의 삶을 영위하던 40대 가장이 ‘생활고’를 이유로 아내와 두 딸을 죽이는 사건이 발생해 우리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헤럴드경제는 강 씨가 검거된 지난 6일부터의 경찰조사를 바탕으로 범행 경위와 동기를 분석했다. 

[헤럴드경제DB사진]

▶사건의 재구성= 경찰에 따르면 이미 오래전부터 불면증을 호소했던 강 씨는 지난 달 8일과 이 달 1일 각각 수면제 성분의 ‘졸피뎀’을 각각 10 정씩 20정 처방받았다. 강 씨는 경찰 조사에서 “잠을 이루지 못해 수면제를 복용해 왔다”고 진술했다. 이후 같은 달 말 강 씨는 가족여행에서 돌아오는 길 충북 대청호 인근을 지나면서 ‘호수로 차를 몰고 다 같이 죽을까’ 갈등했지만 차에서 자고 있던 가족들이 깨어나면서 포기했다.

하지만 강 씨는 지난 5일 밤 11시~12시 사이 수면제를 반으로 잘라 와인에 섞어 아내에게 먹이면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강 씨는 이 날 새벽 아내와 큰 딸, 작은 딸을 목을 졸라 살해하고 119에 “아이들을 죽였고 나도 죽겠다”고 알리고 충북 대청호에서 투신을 기도했다. 이후 강 씨는 문경에서 검거됐다.

▶가장은 왜 가족을 살해했나= 강 씨의 범행 동기는 여전히 미궁에 빠져있다. 강 씨는 최초 생활고 때문에 이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지만 정환경 등을 고려하면 이런 진술은 납득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강 씨는 시세 11억 원 대의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어 주택을 담보로 주식을 해 손실을 보긴했어도 아파트만 팔아도 6억 원 가량이 남는 ‘중산층’ 이상 가족의 가장이었다. 또한 다른 가족들의 금전적 지원도 있었던 것으로 보여 경찰 역시 초기부터 ‘생활고’라는 강 씨의 진술에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경찰은 “피의자가 부부간 불화나 정신적인 질환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며 “현재는 강 씨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해 살해 동기에 대한 다양한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잘못된 가족문화ㆍ상대적 빈곤의식 경종= 전문가들은 ‘잘못된 가족주의 문화가 빚어낸 참극’ 혹은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한 미래의 불안감’ 등을 범행동기로 지목했다. 강 씨가 거주한 아파트 주민들의 말을 종합하면 강 씨는 3년 전 실직한 후 재취업하지 못하고 고시원을 전전했으며, 갖고 있던 아파트를 담보로 주식투자를 해 2억7000만 원 가량을 손해봤다. 이런 상황에서도 아내에게는 매 달 400만 원의 생활비를 주는 등 중산층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가난하진 않았지만 현재의 삶보다 부족하게 살아야 한다는 불안감이 스스로 삶을 극단으로 몰고 갔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강 씨 역시 경찰에서 “유복하게 살아온 내 입장에서는 견디기 힘들었다”고 진술했을 정도로 생활이 일정수준 이하로 내려가는 것에 대한 불안함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강 씨가 당초 계획한 ‘가족 동반자살’은 엄연한 살인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부모가 자식의 목숨을 자신의 소유물이라고 여기고 그들의 동의를 받지 않은 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게 이 사건의 특이사항”이라며 “이런 종류의 살인을 동반자살이라는 단어로 미화하는 독특한 한국 사회의 문화는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gyelov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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