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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 아프다는 딸에 수면제 먹이고 머플러로 목졸라 살해한 비정한 아버지
[헤럴드경제=서지혜 기자]’배 아프다는 큰 딸(14)에게 약이라며 수면제를 먹이고 머플러로 목졸라 살해한 비정한 아버지,

13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의 한 고급 아파트 입구, 호송차에서 갈색 점퍼로 온 몸을 감싸고 고개를 숙인 40대의 남성이 내렸다. 서울 서초동 세모녀 살인 피의자 강모(48) 씨. 누구보다 단란해보였던 가정의 가장이었던 강 씨는 지난 6일 자신의 집에서 아내와 두 딸을 죽인 후 자살을 시도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이 날 현장검증을 위해 9시30분께 서울 서초경찰서를 출발해 10시께 자신이 거주하던 아파트에 도착한 강 씨는 취재진을 뒤로 하고 엘레베이터를 탔다. 현장검증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중산층 이상의 삶을 영위하던 40대 가장이 ‘생활고’를 이유로 아내와 두 딸을 죽이는 사건이 발생해 우리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헤럴드경제는 강 씨가 검거된 지난 6일부터의 경찰조사를 바탕으로 범행 경위와 동기를 분석했다. 

서초 세모녀 현장검증 [헤럴드경제DB사진]

▶사건의 재구성=경찰에 따르면 이미 오래전부터 불면증을 호소했던 강 씨는 지난 달 8일과 이 달 1일 각각 수면제 성분의 ‘졸피뎀’을 각각 10 정씩 20정 처방받았다. 강 씨는 경찰 조사에서 “잠을 이루지 못해 수면제를 복용해 왔다”고 진술했다. 이후 같은 달 말 강 씨는 가족여행에서 돌아오는 길 충북 대청호 인근을 지나면서 ‘호수로 차를 몰고 다 같이 죽을까’ 갈등했지만 차에서 자고 있던 가족들이 깨어나면서 포기했다.

하지만 강 씨는 지난 5일 밤 11시~12시 사이 수면제를 반으로 잘라 와인에 섞어 아내에게 먹이면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이날 실시된 현장검증은 40분간 진행됐다. 현장검증을 하는 동안 강씨는 담담한 태도였고,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범행 재연하는 순간에는 참담한 표정도 엿보였다.

이날 검증은 약을 먹인 것부터 살해까지 모든 것을 재연했다. 강씨는 배가 아프다는 큰딸에게 약이라며 수면제를 주고 물과 마시게 했고, 아내에게는 수면제를 탄 와인을 건네기도 했다. 이후 강씨는 세 명 모두 머플러로 목을 졸라 무찬히 살해했다.

강 씨는 이 날 새벽 아내와 큰 딸, 작은 딸을 목을 졸라 살해하고 119에 “아이들을 죽였고 나도 죽겠다”고 알리고 충북 대청호에서 투신을 기도했다. 이후 강 씨는 문경에서 검거됐다.

▶가장은 왜 가족을 살해했나= 강 씨의 범행 동기는 여전히 미궁에 빠져있다. 강 씨는 최초 생활고 때문에 이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지만 정환경 등을 고려하면 이런 진술은 납득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강 씨는 시세 11억 원 대의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어 주택을 담보로 주식을 해 손실을 보긴했어도 아파트만 팔아도 6억 원 가량이 남는 ‘중산층’ 이상 가족의 가장이었다. 또한 다른 가족들의 금전적 지원도 있었던 것으로 보여 경찰 역시 초기부터 ‘생활고’라는 강 씨의 진술에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경찰은 “피의자가 부부간 불화나 정신적인 질환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며 “현재는 강 씨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해 살해 동기에 대한 다양한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잘못된 가족문화ㆍ상대적 빈곤의식 경종= 전문가들은 ‘잘못된 가족주의 문화가 빚어낸 참극’ 혹은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한 미래의 불안감’ 등을 범행동기로 지목했다. 강 씨가 거주한 아파트 주민들의 말을 종합하면 강 씨는 3년 전 실직한 후 재취업하지 못하고 고시원을 전전했으며, 갖고 있던 아파트를 담보로 주식투자를 해 2억7000만 원 가량을 손해봤다. 이런 상황에서도 아내에게는 매 달 400만 원의 생활비를 주는 등 중산층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가난하진 않았지만 현재의 삶보다 부족하게 살아야 한다는 불안감이 스스로 삶을 극단으로 몰고 갔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강 씨 역시 경찰에서 “유복하게 살아온 내 입장에서는 견디기 힘들었다”고 진술했을 정도로 생활이 일정수준 이하로 내려가는 것에 대한 불안함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강 씨가 당초 계획한 ‘가족 동반자살’은 엄연한 살인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부모가 자식의 목숨을 자신의 소유물이라고 여기고 그들의 동의를 받지 않은 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게 이 사건의 특이사항”이라며 “이런 종류의 살인을 동반자살이라는 단어로 미화하는 독특한 한국 사회의 문화는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gyelov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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