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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상수 기자의 상수동이야기13>“다시, 상수동”
[헤럴드경제=김상수 기자]새벽에 집을 나서면 바람이 차다. 찬 바람에 맞서다보면 걸음은 빨라지고 눈은 앞만 바라본다. 머리엔 버스정류장까지 남은 거리가 본능적으로 계산된다. 2분 남았다. 이 버스를 놓치면 다시 10분을 기다려야 한다. 불이 켜진 편의점 앞을 지날 땐 따뜻한 두유 한잔도 생각난다. 하지만, 발걸음은 늦춰지지 않는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다.

횡단보도 앞에 섰다. 녹색 불이 깜빡거린다. 마치 날 시험하듯 멀리선 10개에서 9개, 8개 천천히 줄어들던 막대는 내 경보(輕步)를 유도하더니, 정작 횡단보도 앞에 서니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도로를 반으로 나눈 버스전용차선 정류장으로 이제 막 버스는 출발한다. 차라리 반으로 가깝지나 말지. 무단횡단을 ‘종용’하는 게 틀림없다. 과태료로 세금을 뜯어내려는 정부의 농간인가. 숨은 가쁘고 화는 난다. 두유 생각에 잠시 망설였던가? 10분을 더 기다리자니 벌써 춥다. 그냥 또 이런 출근길이다.

누군가 말했다. 경주마 같은 삶을 꿈꾼다며. 달리는 데에 최적화된 근육과 흔들림 없이 앞만 바라보는 경주마. 돌이켜보면 출근길조차 마치 경주마를 닮았다. 난 매일 상수동에 있는 집에서 나와 합정동에 있는 버스를 탔다. 하지만, 난 매일 이 거리에 없었다. 그냥 나에겐 출근길일 뿐이다.

2014년은 그런 해였다. 출근길에도, 퇴근길에도, 주말에도 경주마를 꿈꿨다. 아니, 우리의 삶은 대부분 그러하다. 경주마를 꿈꾸는지, 꿈꾸길 바라는지, 꿈꾸길 강요당했는지. 2014년의 후반부는 그런 해였다. 매일 상수동에 있었지만 또 매일 상수동에 있지 않았다.

감성은 일의 강도와 반비례한다. 지각을 각오하고 발걸음을 늦췄다. 독막로 8길을 지나 발걸음을 옮긴다. 하나하나 거리를 살펴본다. 그 사이 많이 변했다. 순수 엄선한 팥만을 고집하던 ‘힘내라 단팥죽’은 그 사이 문을 닫았다. 젋지만 단호했던 주인이 눈에 지금도 선하다.

그러고 보니 상수역 앞 길가엔 예전부터 지금까지 남아 있는 가게가 별로 없다. 콩국수가 일품인 ‘여기가 거기’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게 반갑다. 전자 담배 판매점이 골목 곳곳에 늘었다. 별버거를 비롯, 수제버거 집도 많이도 생겼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시식해볼 심산이다.

베이커리 이삭도 여전히 살아남았다. 프랜차이즈 광풍, 화려한 인테리어로 무장한 빵집 경쟁 속에서도 버텨내고 있다. 반갑다. 한솥도시락도 여전하다. 여전한 가게는 또 그대로 반갑고, 새로 생긴 가게는 또 그 나름대로 기대가 되니 즐겁다.

모두에겐 각자의 일상이 있지만, 내 일상에만 매몰된 사이 나를 제외한 세상의 일상은 또 이렇게 달라져 있다. 그냥 앞만 보고 걸을 때엔 여기가 상수동인지 하수동인지. 그저 나에겐 오가는 수많은 길 중의 하나일 뿐이지만, 잠시 발걸음을 늦춘 것만으로도 이렇게 다시 상수동이 내 눈 속에 들어왔다.

상수동의 일상을 다시 한번 찾아볼 심산이다. 업데이트를 하자니 이 역시 마음이 급해진다. 천천히 걸어보련다. 그냥 일단 던져보자면, 곤, 컬투치킨, 전주식 콩나물국밥, 액자, 페이지 헤어샵, 봉치킨, 김치조치브라더스, 무대륙, 루프 등을 천천히 소개해보겠다.

참, 천천히 걸었는데도 지각은 안 하더라. 쫄지 말자.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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