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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뱃갑 경고그림 도입 논란] (上)해외 사례 보니…경고그림-흡연율 저하, 상관관계 불투명
-해외에서도 미도입국이 더 많아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지난 200년간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가장 유명한 킬러(killer).”

지난 2006년 미국에서 출간된 책인 ‘가장 영향력 있는 허구 인물 101명’은 그 1위로 ‘말보로 맨’을 꼽으며 이렇게 표현했다. 말보로 맨은 담배회사 필립모리스의 제품 ‘말보로’의 광고 캐릭터다. 모자를 눌러쓰고 담배를 입에 물고 있는 카우보이의 모습으로 등장해 남성은 물론 여성에게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며 전세계 담배 판매량을 증진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러나 역대 말보로 맨 가운데 한 명인 웨인 맥라렌(Wayne McLaren)이 폐암으로 죽어가며 “나는 흡연이 인명을 살상한다는 명백한 증거”라고 시인했을 정도로, 수많은 암환자를 떠오르게 하는 불명예스런 캐릭터이기도 하다.

오늘날 말보로 맨은 광고에서 사라졌다. 대신 그의 시인(?)이 반영된 듯 한 ‘증거’들이 각국의 담뱃갑 겉면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시커멓게 그을린 폐, 암세포가 잠식해 들어가는 입, 천식으로 신음하는 아이 등 눈길을 돌리고 싶을 만큼 처참한 사진들이 앞다퉈 겉면에 게재되며 피해를 호소한다. 그리고 아직 세련되고 깔끔한 포장으로 흡연자들을 끌어당기고 있는 한국 담배 역시 그러한 옷으로 갈아입을 기로에 서 있다.

담뱃갑 진열장.

담뱃갑에 혐오스러운 그림을 삽입하는 ‘경고그림’ 도입에 대한 논의가 2월 임시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지며, 그 실효성에 대한 논란도 커지고 있다. 한 켠에서는 문자 경고에 비해 금연 및 흡연 예방에 효과적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반대편에서는 전혀 효과가 없고 오히려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제도 도입에 앞서 우리나라보다 먼저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다른 나라의 사례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우선 세계적인 흐름은 경고그림의 실효성 여부와는 무관하게 찬성론에 힘을 싣는 든든한 뒷배가 된다. 찬반이 팽팽할 경우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 편한 선택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경고그림이 담뱃갑 표지를 장식하기 시작한 것은 고작 15년도 되지 않지만 점차 세계 곳곳으로 확산돼 가고 있다. 지난 2001년 캐나다, 2002년 브라질에서 도입된 이래 현재까지 UN 192개 회원국 중 59개국에서 시행중이고, OECD 34개 회원국 중에서는 16개 나라에서 도입됐다. 우리나라도 비준한 세계보건기구(WHO)의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에서 담배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담뱃세 인상과 같은 가격 정책은 물론이고, 경고그림과 같은 비가격조치를 취하도록 권고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흐름과 맥이 통한다.

하지만 그러한 경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경고그림을 도입하지 않은 국가가 더 많다는 것은 경고그림 반대론에 힘을실어준다. 유럽연합(EU) 28개국 가운데서도 17개 국가가 도입하지 않았다.

실제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찬반이 팽팽히 맞선다. 나타난 통계를 해석하는 차이 때문이다. 경고그림 도입을 주장하고 있는 정부는 캐나다의 사례를 들어 흡연율 감소에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캐나다는 경고그림을 도입하기 직전인 2000년 전체 흡연율이 24%에 달했지만, 도입한 해인 2001년 22%로 줄어들었고, 2005년에는 20%까지 감소했다. 뒤이어 경고그림을 도입한 브라질도 전체 흡연율이 10%나 감소하는 효과를 거뒀다는 것이 정부의 주장이다.

하지만 정부가 내세우는 통계는 자연적인 흡연율의 감소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맹점이 있다. 가령 캐나다의 경우 경고그림 도입 전후 5년간의 흡연율 추세를 보면, 도입 전 5년 동안에는 연평균 1%가 감소했지만 도입 후 5년 동안에는 연평균 0.4%가 감소해 되려 흡연율 감소 추세가 완만해졌다. 브라질 역시 연평균 감소율이 자연감소 수준에 불과한 0.04%다. 

이집트의 한 담배 경고그림. 실제 해외에서는 이 사진보다 훨씬 강한 그림이 많으나 독자들의 혐오감을 유발할 수 있어 비교적 약한 강도의 사진을 게재함.

이는 경고그림을 도입하지 않은 우리나라 흡연율 변화와 비교해 보면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캐나다는 2001년부터 2008년 사이 흡연율이 4% 감소하는데 그쳤지만, 같은 기간 한국은 30%에서 22%로 급감했다.

오히려 싱가포르와 같이 경고그림을 도입한 2004년 흡연율이 12.5%였으나, 2012년에는 14.1%로 증가해버린 사례도 있다.

경고그림을 도입한 국가가 주로 자국에 담배회사를 보유하지 않아 보호할만한 관련 산업이 없다는 점도 생각해 볼만한 대목이다. 캐나다의 경우 담배회사들이 모두 해외 자본에 인수됐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금연정책을 펼치고 있는 국가 중 하나인 호주 역시 자국 담배회사가 없다.

반면 국가에서 담배 전매 제도를 시행해 자국 내 담배산업 기반이 있는 한ㆍ중ㆍ일 동북아 삼국은 모두 경고그림이 없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지난 2009년 경고그림 도입 법안이 통과되었으나, 일부 주에서 소송으로 이어지면서 전면 시행되지는 못하고 있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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