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데스크 칼럼-김영상]설 연휴와 어머니의 폭탄선언
명절은 내겐 ‘속삭임’이었다. 귓볼을 간지럽히는, 기분 좋은 소곤거림.

설날 무렵, 초가삼간 우리집을 찾아온 고모님들은 밤새 할머니와 호롱불 아래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다. 전날 10여리에 달하는 눈 덮인 산길을 헤치고 걸어오면서 등에 지고온 피곤함은 아예 없었나 보다. 어른들의 다정한 대화는 누에가 뽕잎을 갉아먹을때의 자장가 같은 사각거림과도 비슷했다.

새벽 아궁이에 불 때러 부엌에 나갈때까지 어른들은 밤을 꼬박 샌채 얘기꽃을 피웠다. “어른들은 잠 자는 것 보다도 얘기하는 게 좋은 모양이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정다움과 살가움이 정말 좋았다. 물론 전날 고모부들 손에 들려온 고등어며, 계란이며, 고구마는 더 좋았지만.

초가집에 살던 내 어린시절 설날께에 대한 일부 기억이다. 명절과 가족, 그리고 정(情)으로 대변되는 이 감정의 편린은 몇십년을 두고 소중히 간직해온 것이기도 하다.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이런 어린시절 명절의 설렘과 기다림은 누구에게나 좋은 추억으로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변했다. 핵가족화와 현대인의 바쁜 삶, 그리고 교통대란으로 인해 명절은 어느새 귀찮은 존재가 돼 버렸다.

내게도 그랬다. 다정했던 옛 초가집은 아파트로 변했고, 찾아올 친척어른도 안계신데다 설령 손님이 왔더라도 예전처럼 ‘버선발로 마중 나갔던’ 만큼의 반가움은 덜하다. 명절은 삭막해졌다. 세월이 흐르면서 명절 외에 벌초, 제사 등 장남으로서의 책임감은 ‘물먹은 솜’처럼 점점 무겁게 느껴진 것도 사실이다.

남들도 다 그렇다며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자위해왔지만, 이를 곱씹어 봐야할 사건이 생겼다. 이번 설연휴때 어머니가 던진 폭탄선언(?) 때문이다.

차례상을 물리고 밥상에 둘러 앉았을때,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앞으로는 차례나 제사, 모두 절에다 모시고 싶은데 다들 어떻게 생각해?”

갑자기 나온 얘기에 다들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데 당신 말씀은 이어졌다. “제사때 어렵게 내려오는 것도 한두번이 아니고, 명절때 오는 것도 점점 힘들텐데…. 절에다 다 맡기면 좋다고 하더라.”

어머니 주변엔 절에 차례나 제사를 모시는 사람이 적지않고, 그들 얘기를 들어보니 그것도 괜찮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는 게 당신 말씀의 요지였다. 다만 당신은 한가지 못박으셨다. “제사 같이 안지내면 형제들 못만난다. 절이 됐든, 돌아가면서 집에 모이든 1년에 몇번은 그래도 얼굴은 봐야 한다.”

고개를 떨굴 수 밖에 없었다. 갈수록 조상 모시는 일에 버거움을 느끼는 나의 게으름을 눈치챈 것이 분명하다.

“나도 나이 들고, 힘은 없어지고, 매번 서울서 내려오는 것도 힘들고…. 하여튼 생각해 보자.”

시간을 두고, 그러나 오래지 않아 결론 내기로 가족합의를 한 뒤 서울로 출발했지만, 운전하는 내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식을 위해 그런 결단을 내렸을 당신 생각에 눈물이 났다. ysk@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