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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색의 美…그리고, 지우고, 비우다
아라리오갤러리 최병소 展
볼펜·연필로 신문지 색칠하는 작업
15m 대형 설치작업 등 20점 선봬

노화랑 단색화가 박서보 展
지우고 선긋기 반복, 그 자체가 작품
소더비 경매·아트바젤 등 출품 예정



봄의 시작을 알리는 3월, 북촌 일대 화랑가에서 한국 현대미술 원로들의 전시가 잇달아 열린다.

인사동 노화랑에서는 한국의 대표적인 단색화 화가 박서보(84)의 작품을, 삼청동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는 최병소(72)의 작품을 각각 선보인다. 격변의 1970년대 한국 미술계 변화의 큰 흐름을 주도했던 작가들이다. 이들은 그림으로써 지우고, 지움으로써 비우는 반복적이고 수행적인 행위를 통해 미술의 ‘정신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공통 분모를 갖고 있다. 

최병소

현재 한국 미술계는 설치, 미디어아트 등이 주류로 자리매김하는 추세다. 주로 젊은 작가들이 그 중심에 서 있다. 한 미술대학교 교수에 따르면 레지던시 입주 신청 작가들의 출품작 90%가 비디오 작품일 정도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 참여하는 전준호, 문경원 작가도 비디오 작품을 출품한다. 에르메스 미술상도 비디오아티스트에게 돌아갔다.

그런 와중에 미술의 정신성을 추구하는 원로 작가들의 작품세계와 철학은 다른 차원의 울림을 갖는다. 전시 오프닝에 앞서 작가들을 만났다. 

박서보

▶박서보 “여기가 나 코 박고 숨 쉬는 정신의 창입니다”=박서보는 1960년대 이후 선보여왔던 그의 대표작 ‘묘법’ 시리즈로 한국의 단색화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작가다. 초기작은 캔버스를 물감으로 덮은 뒤 물감이 마르기 전에 연필로 선을 긋고, 또 그것을 물감으로 지우고 다시 그 위에 선을 긋는 행위를 되풀이하는 작업을 주로 선보였다. 그 결과물로써의 그림에는 부조같은 마티에르(질감)만이 남는다. 그리고 지우는 행위의 반복과 과정 그 자체가 작품인 셈이다.

최근 박서보는 프랑스 페로탱갤러리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가졌다. 페로탱은 데미안 허스트를 데뷔시킨 갤러리로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다룬다. 미니멀리즘 분야에서는 프랑스에서 ‘영웅’으로 추앙받는 피에르 슐라쥬(Pierre Soulages)와 함께 박서보를 꼽는다. 페로탱 개인전에는 피카소미술관, 퐁피두미술관, 팔레드도쿄 등 세계적인 뮤지엄 관장들이 찾았다. 그의 작품은 곧 홍콩 소더비 경매와 아트바젤에서도 소개될 예정이다.

이번 전시는 ‘에스키스-드로잉’을 주제로 했다. 흔히 아이디어 스케치라고 불리는 것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설계도와도 같은 것이다.

‘깨끗하게 늙는다’는 말은 박서보 작가에게 어울리는 듯 했다. 실제 작가는 지인들에게 이 말을 자주 듣는다고 했다. 어떠한 자극적인 얘기에도 흥분하지 않고 마음을 편안히 갖고 살기 때문이란다.

그의 삶과 예술을 관통하는 비움의 철학은 우연한 발견에서 시작됐다.

“1967년이었어요. 세살짜리 아들이 네모칸 국어 노트에 글씨를 쓰려고 애를 쓰는 겁니다. 그런데 그 서투른 손으로 네모칸 안에 글자를 제대로 썼겠어요?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더니 급기야는 연필로 종이를 찢는겁니다. 여기에서 방법론을 찾았지요. 체념에 이르기 위한 방법론이요. 내 그림은 말입니다. 코를 박고 숨 쉬는 정신의 창입니다.”

▲작품 아래는 박서보의‘Ecriture No. 980717’, 한
지에 혼합매체, 200×260㎝, 1998
[사진제공=노화랑]

‘비움’에 가치를 두고 살았다는 작가는 안성 작업실에서 그림 300여점을 도둑 맞았던 기억을 끄집어냈다. 도둑맞은 그의 그림들은 인사동 화랑가 등에서 100만원 정도의 헐값에 팔려나갔고, 소장자를 거쳐 지금도 간간히 국내 미술품 경매에 나온단다.

“그림 훔쳐 간 사람들이 인사동에 팔고, 이게 또 경매를 통해서 인도네시아 같은 동남아 컬렉터들에게 많이 건너갔어요. 그 덕에 제가 유명해지기도 했죠. 한편으론 잘된 일인가요. 허허.”

▶최병소 “작가가 되려면 작가 자신만의 좋은 방법론을 찾아야”=최병소는 볼펜과 연필로 신문지를 지우는 작업을 반복하는 작가다. 신문지가 너덜너덜 찢어질 때까지 까맣게 색을 칠해버리는 식이다. 그 결과물은 마치 불에 타버린 종이처럼 보인다. 또 시각적으로 단색이어서 한국의 단색화와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 받는다. 실제 1970년대 동경 센트럴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서 단색화 그룹과 함께 전시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15m에 달하는 대형 설치작업을 포함 2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고희를 훌쩍 넘긴 작가는 여전히 수줍은 소년같았다. 욕심없는 예술가가 으레 그러하듯, 낮은 목소리, 웅크린 자세로 작품 세계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작품 위는 최병소의‘Untitled’, 신문ㆍ볼펜ㆍ연필, 54x39x1㎝, 2014
[사진제공=아라리오갤러리]

“1975년 어느 날이었어요. 버스를 타고 가는 데 돌아가신 친할머니와 똑 닮은 할머니가 노점에서 LP를 팔고 있었죠. 할머니 생각에 그 LP를 사들고 집으로 왔어요. 불경(천수다라니경)이었는데 그때 문득 방구석에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신문지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게 시작이었어요.”

지난해 홍콩 아트페어에서는 7m짜리 대형 작품이 소개됐다. 전시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미국의 저명한 컬렉터 부부가 작품을 구매하며 “이 페어 전체를 통틀어 가장 진정성 있는 작품”이라며 극찬했다고.

그는 형상적인 반복보다 행위의 진정성에 방점을 둔다. 1970년대 시대상황에 대한 저항에서 시작된 ‘신문지우기’라는 방법론의 진정성을 현재까지도 우직하게 이어오고 있다.

“요즘엔 회화과만 나오면 다 화가가 되요. 하지만 그림을 잘 그린다고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에요. 작가가 되려면 그 사람만의 ‘좋은 방법’이 있어야 합니다.” 

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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