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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일간의 세계여행] 6. 자이살메르, 인도인이 홍대입구를 말하다
[HOOC=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아침의 사막은 고요하다. 사막의 일원이 되어 아침을 맞는다. 낙타들은 이미 깨어 있다. 기상하자마자 일행에서 멀리 떨어진 사구 너머로 달려가 급한 용무를 해결하고 돌아온다. 잠시 낙타에게 들러 말을 걸어 본다. “잘 잤니?”

이유없이 낙타가 좋다. 커다란 눈망울로 터벅터벅 걸으며 사막을 견뎌내는 녀석들이 신기하다. 인내심이 강한 동물일까? 어쨌든 나는 낙타가 그냥 좋다.

​빵과 삶은 계란이 조촐한 아침식사의 전부다. 어젯밤에 비하면 소박한 식사다. 추운 야영지에서 노숙 후의 빵에 손이 가지는 않는다. 일어났을땐 모르겠더니 슬슬 햇볕이 따가워진다. 당연하겠지만 사막은 사막이다. 빨리 식고 빨리 데워지는 모래의 땅.


​낙타에 다시 올라 어제 왔던 길을 되짚어간다. 여전히 낙타는 선한 속눈썹을 치켜 올리고 앞만 보고 간다. 방울소리를 모래에 뒤섞으면서… 시인의 말대로, 여행자는 겨우 하룻밤을 자고 떠나가지만 낙타는 사막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버킷리스트의 하나를 완성한 뿌듯함과 모래위에서의 노숙이 남긴 피곤함이 교차한다. 이제 사막 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간다.


​​​​낙타사파리에서 돌아온 후, 숙소의 공용욕실에서 샤워도 하고 빨래를 해서 옥상 빨랫줄에 널어놓는다. 낙타사파리를 위해 온 자이살메르, 숙소에선 잠도 안잤는데 서비스가 너무 좋다. 한국말을 정중하게 하는 호스텔주인과 일 잘하는 직원들이 기분 좋게 한다. 옥상에 있는 식당에선 신라면도 먹을 수 있으니 한국인에겐 안성맞춤이다. 이 도시엔 한국인 여행자가 많아서인지 이런 호스텔이 몇 군데 더 있다고 한다. ​


​​​솔직히 말하면, 여행을 다니면서 한국민박이나 한국식당에는 거의 가지 않는다. 이번 여행도 5개월의 장기 여행이지만 배낭 속에 작은 튜브 고추장 두 개만 챙겨 넣고 왔다. 입맛에 맞든 안맞든 현지음식을 먹고 헤매든 그렇지 않든 마음대로 다니는 게 좋다. 낙타사파리는 외진 사막 한가운데에서 많지 않은 인원이 노숙을 해야 해서 예외로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곳으로 정하게 되었다. 여행이 무한대의 자유를 의미한다 해도 안전은 고려해야 한다는 게 지론이다.​

밤에 기차로 조드푸르에 간 후, 다음날 아침에 바라나시로 출발해야한다. 호스텔에 배낭을 맡기고 나온다. 자이살메르 성(城)에 가보기 위해서다. 라자스탄에서 자이푸르, 우다이푸르, 조드푸르의 멋진 성들을 가 봤기 때문에 새로울 것은 없었다. 그런데, 이곳은 유적지로서의 역할뿐인 다른 성들과는 달리 사람들이 실제 거주하는 곳이라고 한다. 민속촌이나 경복궁만 가보다가 하회마을처럼 실제 사람이 거주하는 유적지로 가는 느낌이다.​


​자이살메르 성으로 들어간다. 역시 관광객이 많다. 좁은 골목마다 작은 가게를 아기자기하게 꾸미고 물건들을 판다. 라자스탄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인형과 은으로 된 장신구들, 가방, 숄, 옷들을 파는 가게가 줄지어 있다. 깨끗한 가게에서 가방을 파는 점원은 머리를 단정히 빗어 올린 열 두서넛의 아이다. 분명히 아이인데 가격 흥정도 엄청 잘한다. 저렇게 일을 배우면 자라면 성공할 것 같다. 그냥 학교에 못가고 거리를 배회하는 아이들과는 사뭇 다른 포스다. 골목엔 외국인들도 물론이지만 인도인 관광객들도 많다. 멀리 눈이 마주친 예쁜 인도여학생들의 사진을 찍었더니 달려와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한다. 소녀들의 입가에 웃음이 가득하니 덩달아 즐거워진다.


900년의 역사가 숨 쉬는 골목엔 사람들이 살고 아이들이 놀고 있다. 전성기에는 사막 교역로의 핵심기지로 번영을 누리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파키스탄이 인도에서 분리독립한 후 인도 서쪽 변방이 되어 예전의 영광이 사라졌다고도 한다. 영욕의 긴 시간을 살아온 사람들, 살아갈 아이들이 여기서 웃는다.​

​성곽을 둘러본다. 멀리 자이살메르 시내가 보인다. 이곳은 모든 것이 모래의 색으로 이루어진 도시라 ‘골든시티’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자이살메르 시내를 조망하려고 성곽 둘레를 걷고 있는데 금테안경을 쓴 말쑥한 인도인이 어디선가 나타난다. 이럴 때는 호객꾼이나 사기꾼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약간 긴장하며 대화를 하게 된다.


잠깐 동안 나눈 대화로도 한국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게 빌미가 되어 건물옥상으로 올라가 차를 한잔 마시게 되었다. 그리고 그와 나눈 대화는 놀라웠다. 한국을 좋아하는 그는 1년에 한번은 한국에 간다고 한다. 


인도 사람이 어떻게 그리 자주 한국에 갈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그래서 대화가 더 길어진다. 항공편은 주로 중국남방항공을 이용하며, 한국에서는 충무로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묵는다면서 안국역, 혜화역, 홍대입구 등의 전철역 이름을 거침없이 말한다. 인도인 친구가 안산에서 일하고 함안에도 다녀왔다고 자랑이다. 한국의 근현대사나 문화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점입가경이다. 정말 흥미로운 사람이다. 한번은 자이살메르에서 아픈 한국인을 도와준 적이 있었는데 서울에 여행 갔을 때 홍대입구역에 내리자마자 그녀를 우연히 만난 적도 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세상이 좁다는 말이 맞긴 맞는 거다. 홍대입구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인도사람을 만나 한국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뭐 이런 인도인이 다 있나 생각하고 있는데 그가 한술 더 뜬다. 자기는 한국어를 말할 수 있지만 일부러 영어로 말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한국인들이 여기 자이살메르에 와서 한국 음식 먹고 한국말 통하는 숙소를 찾는 게 이상하다면서 말이다. 틀릴건 하나도 없는 말이다. 그러더니 기어이 유창한 한국어로 말을 하고 자기 이름도 한국어로 써서 보여준다. 그만하면 그의 한국사랑은 인증된 셈이다.


​두 시간의 유쾌한 만남은 여행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었다. 나는 인도가 좋아 여기 왔지만 어떤 평범한 인도사람이 그저 한국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으로 여행할 수는 없을 거라는 선입견도 사라졌다. 그러지 않을 거라 생각해도 오리엔탈리즘이란 게 있었던 거였다. 나도 모르게 서구의 관점으로, 약간은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인도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경제력의 잣대나 현대화의 척도로 다른 나라나 국민들을 대할 때가 있는 게 사실이기도 하니까. 여행 초반인 지금 이런 문제와 마주친 것이 다행이다.


​​그 사이 자이살메르의 석양이 짙어졌다. 작별인사를 하고 어두워진 거리로 나선다. 서둘러 숙소로 돌아가 배낭을 챙겨들고 또다시 떠난다. 이젠 동쪽으로 먼 길을 가야한다. 다시 가고 싶은 그 도시, 바라나시를 향해.

정리=강문규 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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