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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갓볶은 커피 한잔과 강릉 바다…1만원으로 호사를 누리다
시원한 전망을 자랑하는 ‘할리스’전경. 안목해변에 자리잡은 ‘커피커퍼’. 구정면 어단리에 위치한 ‘테라로사’. ‘테라로사 솔저’라 불리는 바리스타들. 커피 장인 박이추 대표의 ‘보헤미안’가는 길.
장인의 손길 박이추 대표의 ‘보헤미안’
상위 10%의 스페셜티 커피 ‘테라로사’
해변이 손에 닿을듯한 ‘브라질’·‘할리스’
인재 육성·박물관 설립…강릉은 ‘커피 도시’



“마카 커피”는 강릉 사투리로 “여기 있는 사람 모두 커피”라는 뜻이다. “모카 커피 달라”는 소리가 아니다.

강릉이 커피로 유명해지기 전부터 강릉 사람들은 안목해수욕장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마카 커피를 즐겼다. 유명 관광지인 경포해수욕장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져 있는 안목해수욕장은 자판기 커피 한잔을 뽑아 바다를 바라보며 여유를 즐기기에 제격인 장소였다.

해변을 따라 줄지어 서 있던 커피 자판기 한대가 웬만한 직장인보다 많이 벌 것이라는 소문이 날 정도다.

질 좋은 커피와 동해…강릉은‘ 커피의 도시’다. 영진항 인근에 있는 카페 브라질에서 손님들이 커피를 마시며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감상하고 있다.

2001년 커피커퍼를 시작으로 안목에 커피 전문점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이제는 커피의 거리로 불린다. 한국커피 1세대로 꼽히는 박이추 보헤미안 대표와 김용덕 테라로사 대표도 전국의 커피 마니아들을 강릉으로 모여들게 했다.

수준 높은 커피를 맛본 덕에 강릉에서는 택시기사도 “기계로 내린 커피는 맛 없어서 못 먹겠다”고 말한다.

하와이코나, 블루마운틴…. 아무리 비싼 커피도 한잔에 1만원대를 넘지 않는다.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 한잔 마시는 정신적 사치를 누리려는 여행객들이 ‘커피의 도시’ 강릉을 찾고 있다. 


▶강릉 커피 양대 산맥=인구 21만명인 중소도시 강릉에는 300여개에 달하는 커피전문점이 들어서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은 보헤미안과 테라로사다.

보헤미안은 강릉터미널에서 차로 20~30분 정도 떨어진 연곡면에 위치하고 있다. 영진항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 위의 하얀 건물이다.

세련된 인테리어의 여느 커피전문점들과 달리 긁히고 반질반질 윤이나는 테이블과 의자 등 실내가 고풍스럽다. 테이블 수는 8개에 불과하다. 창밖을 내다보면 해변에 있는 건물들 사이로 파란 바다가 슬쩍 보인다.

1.시원한 전망을 자랑하는‘ 할리스’전경.
2.안목해변에 자리잡은‘ 커피커퍼’.

이곳에서는 커피 장인으로 불리는 박이추 대표가 직접 커피를 내려준다. 박 대표는 코끝에 안경을 걸친채 커피 거품을 바라보며 주전자로 대여섯 차례 물을 붓는다. 손목에는 검은 보호대를 차고 있다.

박 대표는 1988년 서울 혜화동에서 처음 핸드드립 커피 전문점을 시작했고, 1990년 고려대학교 후문으로 옮겼다. 장사하겠다고 커피를 배우러오는 사람들을 피해 2000년 강릉을 찾았다.

수많은 연어알 중에 1%만 자라서 고향에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인상깊게 들었던 그는 연어가 돌아온다는 연곡천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손님들에게 커피를 내려주고 대화를 나누는 여유를 누리기 위해 한적한 바닷가를 찾았건만 보헤미안의 커피 맛을 보려는 사람들은 이 곳까지 물밀듯 밀려온다.

박 대표는 사람들이 강릉까지 찾아오는 이유는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비워있는 마음을 채우기 위해 커피를 찾는다는 것이다.

가게 안에 있는 작은 로스팅룸에서 “커피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다. 어떤 마음으로 커피를 만드느냐에 커피 맛이 달려있다”고 말하던 그는 “커피 주문이 들어왔다”는 말에 부리나케 주방으로 돌아갔다.

3.구정면 어단리에 위치한‘ 테라로사’
4‘ 테라로사 솔저’라 불리는 바리스타들.
5.커피 장인 박이추 대표의‘ 보헤미안’가는 길.

테라로사 본점 역시 바닷가에서 한참 떨어진 구정면 어단리에 위치하고 있다. 드넓은 논밭과 고불고불하고 좁은 시골길을 지나면 하얀색 건물이 나온다.

테라로사는 상위 10%에 든다는 스페셜티 커피로 이름을 떨치면서 서울, 제주도, 부산 등으로 지점을 확장하고 있다.

하지만 본점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손님이 몰려 여전히 대기표를 받고 기다려야 한다. 지난 설 연휴에는 30분을 기다린 끝에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김용덕 테라로사 대표는 2001년 목수 4명과 함께 직접 테라로사를 지었다. 가게 곳곳에는 김 대표가 유럽에서 수집한 커피잔, 그라인더(커피를 가는 도구) 등 커피용품들이 전시돼 있다.

바(bar)석에 앉으면 숙련된 바리스타들이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외국에서 테라로사로 연수받으러 온 사람들은 테라로사 직원들을 ‘테라로사 솔저(soldier)’라고 부른다. 그만큼 엄격한 교육을 받은 바리스타들이 예사롭지 않은 손놀림으로 커피 거품 위에 뜨거운 물을 거듭해서 붓는다.

▶바다와 커피=보헤미안이나 테라로사는 본점 외에 사천해수욕장, 경포해수욕장 등 바닷가에도 지점을 두고 있다. 이들 외에도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의 깊은 맛과 향을 즐길 수 있는 곳들이 적지 않다.

커피커퍼는 안목해변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연 커피 전문점이다. 커피커퍼 1호점은 유리창 밖으로 바다와 모래사장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최금정ㆍ김준영 부부는 2001년 자판기 커피로 유명한 안목에서 “질 좋은 커피도 선보이자”는 뜻으로 커피커퍼를 세웠다.

강릉항 해맞이공원에 설치된 커피 조형물.

횟집과 조개구이집 일색이었던 안목해변이 커피의 거리로 탈바꿈하면서 스타벅스 등 유명 프랜차이즈도 들어섰다.

이 가운데 할리스는 단연 시원한 전망을 자랑한다. 할리스는 강릉항요트마리나 건물 4층과 5층에 위치하고 있다. 4면이 통유리여서 어느 자리에 앉아도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영진항 인근에 있는 카페 브라질도 통유리를 통해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눈앞에서 볼 수 있는 명소다.

▶커피를 문화로=강릉을 ‘커피의 도시’로 만든 주역들은 단지 마시는 커피를 파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커피나무 재배, 박물관 설립 등 커피 산업과 문화 발전을 위해서도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보헤미안은 강릉 연곡면 외에 지난해 11월 사천면에 박이추커피공장을 세웠다. 신선하게 볶은(로스팅) 커피를 판매하고, 집에서도 커피를 맛있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노하우를 전수하는 수업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보헤미안은 강릉MBC와 함께 2016년부터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에서 커피나무를 재배하는 사업도 추진 중이다. 2018년부터는 크라우드 펀딩 방식으로 투자자를 모집한다. 투자자에게는 커피나무 한그루당 50만원에 판매해 수확한 원두를 1년에 4차례 제공한다.

이같은 사업을 통해 조성된 장학금으로 커피 재배 전문가나 바리스타 등 인재양성에 나설 계획이다.

테라로사는 본점 바로 옆에 올 여름 완공을 목표로 새로운 건물을 짓고 있다. 김용덕 대표는 이 건물을 하나의 설치미술관처럼 만드는 것이 꿈이다. 이곳에서 본차이나(뼛가루를 섞어 만든 고급 도자기) 전시회나 인근 지역 주민들이 직접 재배한 친환경 농산물을 파는 ‘파머스마켓’을 개최하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현재 강릉시 왕산면에서 커피박물관을 운영 중인 커피커퍼는 인천 송도와 중국 윈난성 망스(芒市)에도 커피박물관을 설립할 예정이다. 방문객들은 커피박물관에서 커피를 맛보는 것은 물론 재배하고 있는 커피나무를 구경하고, 로스팅이나 핸드드립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강릉=글ㆍ사진 신수정 기자/ss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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