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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사진 한장에…내 모든것 던졌다”
뮤지컬 ‘로기수’ 김태형 연출, 대본 받기도 전에 거제수용소 춤사진에 매료…격투·제식훈련 등 모든 소리 탭댄스로 묘사
거제수용소와 춤…묘한 이질감에 매료
춤 종류 스윙댄스 등 고민하다 탭댄스로 결정
혹독한 안무에 배우들 몸무게 쑥 빠지기도
첫 공연후 아내의 장문 SNS에 감격의 눈물



뮤지컬 ‘로기수’는 한장의 사진에서 시작됐다. 한국전쟁 당시 종군기자 베르너 비쇼프가 찍은 거제도 포로수용소 사진이다. 수십명의 포로들이 복면을 쓰고 팔짱을 낀 채 포크댄스를 추고 있다.

당시 포로수용소 내 북한군 포로들도 공산당파와 반공파로 갈라져 대립하고 있었다. 미군으로부터 춤, 노래 등을 배운 반공파 포로들은 얼굴이 노출되면 공산당파 포로들에게 해코지를 당할까 두려워 복면을 썼던 것이다.

이 사진을 바탕으로 탭댄스에 빠진 17세 북한군 포로 로기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이 탄생했다.


‘로기수’의 김태형 연출은 2년 전 제작사인 아이엠컬처의 정인석 대표로부터 이 사진에 대한 설명을 듣는 순간 “바로 하겠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대본이 나오기도 전이었다.

“포로수용소와 춤은 어울리지 않잖아요. 묘한 이질감에 매력을 느꼈어요. 춤의 종류는 스윙댄스 등을 고민하다가 탭댄스로 결정을 했어요. 탭댄스라고 하면 ‘브로드웨이 42번가’처럼 전형적인 쇼뮤지컬의 일부로 인식되지만 자세히 보면 종류가 다양해요”

극중 병사들의 제식훈련, 빨래를 방망이로 두드리기 등도 탭댄스로 묘사된다. 탭댄스에 매료된 로기수에게 주변의 모든 소리들이 탭댄스 리듬으로 들리는 현상을 묘사한 장면이다.

“당구에 미친 사람들은 책을 펴도 당구공이 왔다갔다하는 것이 눈앞에 그려진다고 하잖아요. 신선호 안무감독이 기본 동선과 안무를 짜고 박용갑 선생님이 그 안에 탭댄스를 집어넣었죠. ‘탭퍼갑’이라고 불리는 유명하신 분이예요”

배우들은 탭댄스를 배우기 위해 지난해 10월부터 연습에 들어갔다. 로기수역에 트리플캐스팅된 배우 윤나무는 몸무게가 10㎏나 빠졌다.


“이렇게 배우들을 괴롭힌 공연이 있었나 싶어요. 1막 엔딩에서 로기수가 무중력 상태에 있는 것처럼 날아다니고 빙글빙글 도는 장면도 욕심을 냈죠. 무대가 좁아 와이어 대신 기계를 사용했는데 수백만원 들었어요. 춤을 추게 된 소년의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을 표현하고 싶었죠”

포로수용소에 갇혀있던 로기수는 춤을 통해 희망을 품게된다. 하지만 포로수용소 내 이념 갈등은 극에 달하고, 동생 로기수를 지키려던 형 로기진은 목숨을 잃는다. 공산군 포로들과 격투를 벌이는 로기진과 행복한 얼굴로 춤을 추는 로기수의 대비에 관객들은 연신 손수건으로 눈가를 누른다.

커튼콜에서 출연 배우들이 모두 함께 탭댄스를 추는 것도 놓치기 아까운 장면이다.

‘로기수’를 만든 김 연출은 지난 2007년 연극 ‘오월엔 결혼할꺼야’로 데뷔해 ‘옥탑방 고양이’, ‘모범생들’, ‘히스토리보이즈’, ‘아가사’ 등 히트작들을 줄줄이 쏟아냈다. 그는 과학고를 거쳐 카이스트(KAIST)를 다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날카롭고 비판적인 작품을 만들고 싶어서 연극을 시작했어요. 대중적인 작품도 하고 있지만 기존 공연과 다른 형식으로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죠”

그는 2013년에는 10개 작품에 참여했고, 지난해는 고양문화재단이 제작한 오페라 ‘나부코’를 연출하는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연출가다.

“제가 좋은 학교들을 나와서 승승장구하는 것 같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바닥을 치는 경험을 많이 했어요. 한동안 게임에 빠져서 몇 달간 집에 틀어박힌 적도 있어요. 한예종 졸업할 때 나이가 서른이었죠. 같은 학교를 나온 추민주, 장유정 등이 뮤지컬 ‘빨래’, ‘김종욱 찾기’를 만들때 ‘난 뭐하고 있지’ 고민도 많이 했어요”

배우 지망생은 오디션을 보면 되지만 연출 지망생은 불러주는 곳이 없으면 막막하다. 선생님들은 “10년만 버텨라. 버티는 사람이 잘하는 거다”라고 다독였다.

“공연 관련된 일이라면 뭐라도 하자고 생각했어요. 조명 스텝 등을 하다가 결국 연출이 됐죠. 마음을 바꿨더니 일이 잘 풀렸어요”

그는 뮤지컬 ‘브루클린’에서 함께 작업했던 뮤지컬 배우 이영미와 지난해 결혼식을 올렸다. 뮤지컬계 ‘카리스마의 여왕’으로 불리는 이영미는 얼마 전 아들을 출산했다.

“아내가 ‘로기수’ 첫 공연을 보고 SNS에 장문의 글을 올렸어요. 제가 ‘왜 나랑 결혼했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오늘 그 답을 찾았다. 날 감동시키기 때문이다’라고요. 제가 애도 안 보고 연습한다고 늦게 와서 뭐하고 있나 싶었는데 공연을 보고 감동을 받았대요. 그날 밤 저도 엄청 울었어요”

신수정 기자/ssj@heraldcorp.com

[사진제공=아이엠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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