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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녀림과 힘이 공존하는 천상의 목소리…카운터테너 루이스 초이
[헤럴드경제=신수정 기자]지난 1월 뮤지컬 ‘파리넬리’에서 카운터테너 루이스 초이는 화려한 기교와 하늘을 찌를 듯한 고음으로 관객들을 홀리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그가 오는 4월 재공연으로 돌아와 다시 천상의 목소리를 들려줄 예정이다.

1월 공연 당시 입소문이 나면서 루이스 초이가 출연한 6회차는 전부 매진을 기록했다. 커튼콜 때 객석에서는 아이돌 공연 못지않은 열광적인 환호가 쏟아졌다.

지난 25일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루이스 초이는 “당시 지인들도 표를 못 구해 2시간 넘게 공연장 밖 모니터로 봤을 정도”라고 말했다.

‘파리넬리’는 변성기 이전에 거세를 당해 미성(美聲)을 유지했던 카스트라토 파리넬리의 일생을 다뤘다. 가성으로 여성 음역대를 소화하는 카운터테너는 파리넬리에 적역이다.

특히 카운터테너의 80~90%는 알토, 메조소프라노 음역대만 낼 수 있지만 루이스 초이는 소프라노까지 소화하는 보기 드문 카운터테너다.

“독일 유학 시절 선생님이 저를 연구대상으로 삼았을 정도예요. 저는 노래와 테크닉을 배우고 싶은데 선생님은 제 목을 만져보면서 ‘얘는 어떻게 고음을 내는 거지?’라며 연구를 했어요. 가녀린 여자목소리 같은데 그안에 남성적인 힘이 느껴지는 오묘한 소리를 내니까요. 신기함을 넘어 천상의 소리라고도 하죠”

카스트라토의 삶을 다룬 만큼 ‘파리넬리’에는 ‘울게 하소서’와 ‘나는 파도를 가르는 배(Son Qual Nave Ch‘agitata)’ 등 유명한 오페라 아리아들이 중간중간 등장한다. 특히 파리넬리는 첫 등장부터 ‘나는 파도를 가르는 배’로 관객들의 기선을 단숨에 제압한다.

“워낙 기교가 많아서 최상의 컨디션일 때도 부르기 힘든 곡이예요. 6회 공연 동안 똑같이 부른 적이 없어요. ‘울게 하소서’ 역시 끝부분의 고음을 길게 끌 때도 있고 짧게 마무리할 때도 있어요. 그것이 바로크 음악의 묘미예요. 가수의 역량에 따라 달라질 수 있거든요”

‘파리넬리’ 넘버(삽입곡)에는 오페라 아리아 뿐만아니라 헨델의 ‘사라방드(Sarabande)’를 리메이크한 곡이나 완전히 새롭게 창작한 곡들이 섞여 있다.

“저는 주로 가성으로 부르던 가수인데 뮤지컬에서는 진성과 가성을 넘나들어야 해요. 진성과 가성이 안맞는 부분은 김은영 음악감독님과 함께 고치고 또 고치고…. 한곡 당 20번 정도는 수정했을 거예요”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연기였다. 오페라는 대사도 노래로 전달하는 등 노래 위주다. 하지만 뮤지컬은 자연스러운 대사 전달이나 동작이 필요해 액팅코치에게 두달 간 연기지도를 받았다.

“동료 배우들이 연습 때도 감정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연기를 했어요. 제가 아직 뮤지컬 연기에 서투르니까 그렇게 해준 거죠. 다들 5~7㎏씩 몸무게가 줄었는데 다 제 잘못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열과 성을 다해 도와줬어요”

이처럼 동료배우들이 진심으로 대해줬던 것은 루이스 초이의 겸손함과 밝은 성격 덕이다.

“국립오페라단 ‘아랑’에서 신들린 연기를 보여준 적도 있지만(웃음) 모든 걸 내려놓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저보다 한참 어린 배우들이 응원해주면 ‘너희들 덕분이야’라고 했어요. 연습 때 저 때문에 막혀서 ‘10분 쉽시다’라고 해도 자존심이 하나도 상하지 않았어요. ‘한번에 잘하면 내가 왜 한국에 있어. 세계적인 배우가 됐겠지’라면서요”

루이스 초이는 원래 초등학교 음악선생님이었다. 대학에서 음악교육을 전공하고 시골의 한 초등학교에서 2년여 간 교편을 잡았다.

“가을 운동회에서 아이들이 오재미로 박을 터트릴 때 막대기를 잡아주던 그 삶이 너무 행복했어요. 주말에는 가끔 서울에서 공연도 했어요. 뒷풀이 때 선생님들께서 카운터테너의 본고장인 독일에서 공부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하신 말씀이 계속 맴돌았죠”

사표를 내고 독일로 건너간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다. 5년 과정인 석사와 박사를 4년만에 마쳤다. 파리넬리 콘서트 등 2년간 유럽 무대에서 활동하다가 2010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맨 처음 무대에 섰을 때 제가 입을 떼는 순간 사람들이 자빠졌어요. 관객들의 80~90%는 노래가 끝날 때까지 웃거나 수군수군 거렸어요. 쟤 남자야? 여자야? 완성도가 없어서 웃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더 배우자고 결심했죠. 15년이 지난 지금은 관객의 30~40%만 웃어요”

귀국 후 그는 여러 오페라 무대에도 섰다. ‘아랑’의 경우 그의 목소리를 소개하기 위해 김유석이라는 캐릭터를 새로 만들었을 정도다.

하지만 오페라는 한편당 2~3회 공연에 그쳐 한계가 느껴졌다. 그는 단독콘서트, 토크콘서트 등으로 혼자만의 길을 걸어갔다.

“무대라는 무대는 다 서봤어요. 공연장에서 뜨거운 박수를 받았지만 관객들이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면서 루이스 초이라는 존재는 금방 잊혀졌죠. 고민에 빠져있던 차에 뮤지컬 ‘파리넬리’를 만났어요”

‘파리넬리’는 관객들의 호평으로 4월~5월 유니버설아트센터에 이어 의정부, 안양에서 공연이 이어진다. 관객들과 함께 하는 ‘파리넬리’ 콘서트도 구상 중이다.

“‘파리넬리’ 출연 전에는 후배나 제자들이 ‘배우면 뭐해요’라고 했지만 지금은 길이 많아졌잖아요. 제가 길을 닦아 나가 카운터테너로서 한 획을 긋고 싶어요. 나중에 나이들면 다시 학교로 돌아갈 거예요. 그때 지금의 추억들을 돌이켜보면 눈물이 나겠죠. ‘나 멋지게 돌아왔다’고 하고 싶어요”

/ss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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