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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길용 기자의 화식열전> 공자의 획린(獲麟)과 삼성의 판다(熊猫)
[헤럴드경제=홍길용 기자]기원전 481년 노(魯) 애공(哀公)은 사냥에서 이상한 짐승을 한 마리 잡는다. 불길하게 여긴 사람들은 이 짐승의 목을 찔러 죽인다. 사람들은 짐승의 시체를 공자(孔子)에게 보이며 무엇인지 물었다.

공자가 답한다. “기린(麒麟)이다”

이후 공자는 하늘을 쳐다보며 탄식한다. “이제 나의 진리는 끝났구나”

이 때 공자가 지어 부른 노래다.

‘밝은 임금이 태어나니, 기린과 봉황이 노니는구나/지금은 태평성대가 아니거늘, 너는 무엇을 구하기 위해 세상에 나왔는가/기린이여! 내 마음이 몹시 우울하구나’

상서러운 동물인 기린을 알아보지 못해 잡아죽이는 참혹한 현실에 대한 한탄이다. 공자의 어머니가 꾼 태몽도 기린이었다. 기린은 곧 공자요, 기린의 죽음은 공자가 설파했던 인의(仁義) 정치의 종말을 뜻한다. 공자의 마지막 역저인 춘추(春秋)도 ‘획린(獲麟)’ 두 글자로 끝난다. 획린은 이후 절필(絶筆)의 다른 말이 됐다.

실제 획린 이후 전국시대는 춘추시대와 비교해 모든 양상이 훨씬 더 잔인해진다. 전쟁의 규모도 커지고 수 십 만 명을 생매장하는 대량살상도 이뤄진다.

판다는 번식력이 약하고 섭생(攝生)도 까다로워 이른바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아니면 멸종되기 쉬운 종이다. 이런 점에서 기린과 닮았다.

오늘날 중국인들의 판다 사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하지만 그 기원은 깊지 않다. 당(唐) 측천무후 이후 기록이 몇 차례 있지만 많지 않다. 판다가 역사의 중심이 된 것은 1972년 미중 정상회담 때 판다외교가 펼쳐지면서다. 결국 고대에 맥(貊), 기린 등 상서로운 진수(珍獸)들을 신봉해 온 중국인들의 전통이 20세기 들어 판다로 되살아난 게 아닌가 싶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우리나라에 선물한 판다 한 쌍이 용인 에버랜드에 둥지를 틀게 된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주말 중국 하이난(海南)에서 열린 보아오(Boao)포럼에서 “최고의 기술을 이용해 최신식 설비를 지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판다를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때마침 AIIB(아시아개발은행)에 한국이 참여를 선언하며 한-중간 경제교류가 더 끈끈해졌다. 우리 기업들이 아시아 인프라 개발에 참여할 길도 넓어졌다.

이 부회장은 아시아의 다보스포럼으로 중국이 공을 들이는 보아오포럼 이사다. 각국의 내로라하는 정치지도자와 기업인 등이 많지만 경제인 가운데는 이 부회장이 단연 백미(白眉)다. 그만큼 한-중 경제협력과 아시아 경제개발 과정에서 이 부회장의 역할은 클 수 밖에 없다. 삼성이 판다를 돌본다는 점은 예사로운 인연이 아니다.

화식(貨殖)은 화식(和殖)이다. 한중간 경제협력의 상징이 될 판다가 잘 자라기를 기원해 본다.

홍길용 기자/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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