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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식열전> 기업인의 돈과 정치인의 돈은 다르다
[헤럴드경제=홍길용 기자]춘추시대에 자수성가한 큰 부자가 있었다. 아들이 셋인데 둘째가 이웃나라에서 죄를 지어 옥에 갇힌다. 부자는 친분 있던 이웃나라 재상에게 예물을 주고 아들을 구명하려 한다. 애초 막내를 보내려 했는데, 맏이로써 동생을 구해야 한다며 큰 아들이 막무가내로 나선다. 부자는 맏이에게 돈만 전하고 바로 귀국하라고 신신당부 한다.

맏이에게 돈을 건내 받은 재상은 왕에게 민심 안정을 위한 대사면을 건의, 부자의 아들이 풀려나도록 손을 쓴다. 그런데 재상에게 돈을 전한 맏이는 바로 돌아가지 않고 동생의 석방을 기다린다. 그러면서 ‘대사면으로 풀려날 것이면 굳이 돈을 안 써도 됐을 것을’이라며 아까워한다. 재상은 이를 눈치채고 맏이에게 돈을 돌려준다. 그리고 왕에게 ‘이웃나라 부자의 아들을 구하려는 대사면이라는 소문이 돕니다’다고 귀띔한다. 왕은 크게 노해 부자의 아들을 처형한 후 대사면령을 내린다.

결국 맏이는 동생을 잃고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부자는 슬퍼하되 놀라지는 않는다.

“맏이는 재산을 모을 때 함께 고생을 해서 씀씀이가 인색하다. 하지만 막내는 부자가 된 후에 자라 돈 쓰는 데 주저가 없다. 맏이에게 맡길 때부터 예상했던 일이다”

춘추시대 범려라는 정치인에서 이후 도주공이라는 큰 부자로 변신한 치이자피의 명철보신(明哲保身) 고사다. 사기에 나오는 여러 뇌물사건 중 극적인 반전이 가장 돋보인다.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로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사실이라면 기업인과 정치인간의 돈 거래다.

기업인에게 돈은 재화와 용역의 대가다. 반대로 정치인에게 돈은 대가가 아니다. 정치인은 돈을 받아도 돈 때문에 움직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웃나라 재상이 돈을 받고 일을 해주다, 굳이 돈을 돌려주고 다 된 일을 뒤틀어 버린 이유다.

돈은 정치인에게 힘을 주지만, 대가로서의 돈은 정치인에게 독(毒)이다. 그래서 명분이라는 해독제가 필요하다. 정치인 수뢰사건에서 ‘대가성 없음’ 결론이 잦은 이유다.

그래서 정치인에 청탁을 할 때는 돈을 아까워하지 말아야 한다. 명분도 살려줘야 한다. 돈 아까워하는 마음을 들키면 일도 이루지 못한 채 미움만 산다. 명분을 세워주지 못하면 뇌물공여미수로 역풍을 맞을 수도 있고, 돈을 주고도 앙갚음 당할 수 있다.

물론 청탁하지 않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정치권에 돈 주고 싶어하는 기업인들이 어디에 있을까.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기업하려면 정치권을 줄을 대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실제 금융권(채권단), 공기업 등을 보면 정치권의 힘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재물을 늘리려는 화식(貨殖)을 하려다 자칫 재앙을 부르는 화식(禍殖)이 될 위험을 늘 경계해야 한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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