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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상수 기자의 상수동이야기16> 수동 반녹(半綠) 벚꽃길
[헤럴드경제=김상수 기자]좀 더 나이를 먹으면 당연한 듯 여긴 일에 “왜”라는 의문이 든다. 당연히 일을 하고 당연히 커야 한다고 믿었다. “왜”라는 의문이 드는 건, 당연한 듯 보낸 시간이 이제 와 돌이켜보니 허무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라.

시간이 흐르면서 가능성도, 선택지도 줄어든다. ‘해야만 하는’ 일이 늘어나고, ‘할 수 있는’ 일은 줄어든다. “왜”라는 의문은 시간에 대한 반항이다. 물론 다시 선택을 한다 해도 같은 결론인 줄 알기에, 그저 하릴없이 반항만 할 뿐이다. 시간이 흐름에. 


벚꽃이 아름답기만 한 시절이 있었다. 언제부터일까. 벚꽃은 아름답기보단 복잡한 꽃이 됐다. “왜”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한 때와겹친다. 왜 벚꽃은 이리 아름다울까, 왜 이리도 빨리 질까, 지고 나면 왜 흔적조차 없어질까. 눈 깜짝할 새 지는 게 억울하면, 목련 잎처럼 거리 위에 누워 시위라도 하련만. 지는 게 미안하기라도 한 걸까. 흔적조차 남기질 않고 바람처럼 사라지니 말이다.

상수동에 또다시 벚꽃이 돌아왔다. 유난히 봄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 하루빨리 구경하자는 제안에 아버지가 말했다. “벚꽃이 별게 있나. 또 일년 지났구나 하는 거지.” 벚꽃이 그저 좋기만 했던 때엔 몰랐으리라. 이젠 조금은 알 것 같다. 벚꽃은 한결같지만, 벚꽃을 보는 사람은 계속 변한다. 시간은 흐른다.

다시 보니, 올해는 사람만 변한 게 아니다. 상수동 벚꽃길도 변했다. 서울화력발전소(당인리 발전소)가 공사에 들어가면서 벚꽃길을 폐쇄했다. 남은 건 발전소 앞 도로가 벚꽃뿐이다. 상수동 벚꽃놀이는 돗자리에 도시락 들고 벚꽃 나무 아래에서 추억과 수다에 젖는 맛인데, 올해엔 불가능해졌다.

이 소식을 아는지 모르는지 올해에도 인파는 몰렸다. 벚꽃길이 문 닫으니 도로엔 더 많은 사람이 몰린 듯하다. 윤중로를 방불케 한다. 고즈넉한 매력의 상수동 벚꽃길과 거리가 멀어 안타깝다. 화력발전소 공사가 언제 끝날지 모르니, 또 벚꽃길이 온전히 보전될지 모르니 다시 그때 그 풍경을 되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인파는 몰렸고, 인근 커피숍도 주말마다 만원사례다. 낯선 풍경이긴 하다. 이 역시 1년 사이 변한 풍경이다. 그만큼 상수동 벚꽃길이 유명세를 탄 모양이다. 


벚꽃길 인근에는 엔트러사이트와 무대륙이란 카페가 유명하다. 엔트러사이트는 터줏대감 격이고, 무대륙은 후발주자인 셈인데, 무대륙은 상대적으로 고즈넉한 분위기가 장점‘이었’다. 넉넉한 테이블 간 간격이 좋았는데, 최근엔 테이블을 늘렸더니 사람이 많고 좀 소란스럽다.

좀 더 내려가면 르뾔이따쥬란 빵집 겸 커피숍이 있다. 조용한 분위기를 원한다면 추천한다. 테이블이 많지 않은 게 단점이다.

지금 상수동을 찾는다면 좀 늦은 감이 있다. 이미 벚꽃이 많이 떨어졌다. 반백(半白) 아닌 반녹(半綠)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도 그 나름의 멋은 있다. 벚꽃이 그저 샤방샤방하기만 한 나이가 아니라면 말이다. 반녹의 벚꽃, 지는 벚꽃이 던져주는 인생의 여유이다.

당신의 지난 1년은, 그리고 다시 시작된 1년은 어떠했느냐고 말이다.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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