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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홍길용]무(武)의 나라 일본…팽창DNA를 어쩌나
1854년 일본은 페리 제독이 이끄는 미시시피호를 기함(旗艦)으로 한 미국 함대에 굴복해 개항했다. 순순히 문을 연 까닭에 그다지 굴욕적인 조건도 아니었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빗장을 푼 결과 일본은 역시 가장 먼저 근대화에 성공한다.

개항 후 불과 50년만인 1905년에는 미국과 대등한 거래를 하는 위치까지 오른다. 이 해 7월 일본 총리 가쓰라다로(桂太郞)와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특사인 태프트 육군장관이 도쿄에서 회동한다. 가쓰라는 동아시아 평화(?)를 내세우며 분쟁원인인 대한제국을 일본이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태프트는 필리핀을 얻는 조건으로 조선반도에 개입하지 않기로 한다. 이후 가쓰라 총리는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탈하고, 태프트 장관은 미국 27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며 승승장구 한다.

조선반도를 강점한 일본은 이를 기반으로 중국 침공에 나선다. 중일전쟁으로 일본군이 중국을 한창 유린하던 1941년 미국이 개입한다. 미국과 같은 연합국인 중국에서 일본군을 철수시키라는 요구다. 하지만 예전의 일본이 아니었다.

1941년 12월7일 일본군은 미국 태평양 함대 사령부가 있던 하와이 진주만을 공습한다. 미국으로서는 독립전쟁 이후 처음으로 외국군에 본토가 유린당한 치욕이다. 태평양함대가 무력화되면서 동남아시아가 일제의 치하에 떨어진다. 미국이 태평양전쟁에서 승리는 거뒀지만 치러야했던 희생은 어마어마하다. 페리 제독의 개항 후 91년만인 1945년 9월 2일 일본은 다시 한번 미국 미주리호 함포 아래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한다.

그런데 이후 미국이 한국전쟁과 월남전을 치르는 과정에서 패전국 일본의 경제는 급격히 재건되고 경제대국으로 국제무대에 복귀한다. 피는 미국이 흘렸지만, 돈은 일본이 번 셈이다.

경제 재건이 어느정도 성공하면서 일본은 끊임없이 재무장을 시도해왔다. 1960년 일본 총리 기시노부스케(岸信介)가 미일안전보장조약을 개정한 게 시작이다. 그리고 55년만인 2015년 기시의 외손자인 아베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미국이 채운 전범국가 족쇄를 푼다.

찬찬히 살펴보면 미국과 일본의 밀월이 강화될 때마다 아시아에는 비극이 벌어졌다. 한일합방이 없었다면 중일전쟁도 국공합작도 없었을 지 모른다. 한반도 분단도, 한국전쟁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동아시아 갈등의 뿌리를 찾아 올라가면 일본이 있고, 일본을 지지한 미국이 있다.

가마쿠라막부((鎌倉幕府) 이후 1000여년 동안 쇼군(將軍)이 무인정치를 하던 일본이다. 무(武)의 나라다. 칼을 쥐면 휘두르고 싶어한다. 실제 일본은 토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 이후 힘이 강해질 때마다 팽창정책을 펼쳤다. 아시아인들은 이 같은 위험을 잘 안다. 그래서 일본 정부와 지도자의 진심 어린 사과가 중요하다. 사과를 받고 싶어서가 아니다. 가장 강력한 ‘양심의 족쇄’가 아니면 일본은 ‘팽창 DNA(유전자)’를 스스로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성도 없는 일본에 칼을 쥐어주기는 아직 너무 위험하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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