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역사의 민낯]9살에 冠禮 치른 효장세자…영조, 교서로 훈계하다
한국 고전번역원과 함께 읽는 승정원 일기<14>
1727년(영조 3) 9월 9일, 효장세자(孝章世子)의 관례(冠禮)를 치른 날 교서를 내렸다. 교서는 임금이 특정한 개인이나 다수의 대중에게 내리는 문서이다. 임금이 직접 짓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예문관 지제교가 대신 지었는데, 이날 내린 교서는 영중추부사 이광좌가 지어 올렸다.



왕은 이르노라.

왕세자에게 교시하노라. 의정부 좌의정 조태억에게 옛 법식에 따라 길일을 잡아서 동궁(東宮)에 나아가 관례를 행하도록 명하였다.

내가 생각건대, 옛날 성왕(聖王)이 관례를 중시한 것은 관(冠)을 쓴 다음에야 복색(服色)이 갖추어지고, 복색이 갖추어진 다음에야 품위가 바르게 되기 때문이다. 세 번 관을 번갈아 씌우면서 갈수록 더욱 존엄하게 하는 것은 관을 씌울 때마다 성인(成人)으로서 지켜야 할 도가 있음을 보이는 것이다. 관을 쓰고 나서 자(字)를 지어 주는 것은 성인으로 대해 주는 도이니, 성인으로 인정해 주고 성인의 예를 책임지우는 것이다. … 아, 보불()과 면류관이 화려하기만 한 것은 아니니, 장차 그것에 부합되는 실제의 책임을 떠맡아야 한다. 진실로 그렇게 할 수가 없다면 어린아이와 다를 게 뭐가 있겠는가. 너는 부디 두려운 마음으로 경계하고 삼가서 혹시라도 태만함이 없도록 하라. 어린 마음을 버리고 덕행을 순히 완성하여 성인의 도를 부지런히 닦으면 하늘이 내리는 경사를 영원토록 끝없이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교시하니 잘 알았으리라 생각한다.



이때 영조는 아홉 살인 효장세자에게 관례의 의미를 설명하고, 왕세자로서의 책임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세자의 훌륭한 품성을 칭찬하고, 학문에 힘써서 마음가짐을 바르게 유지하여 나라를 위해 큰 역할을 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관례는 성인으로 인정해 주면서 성인으로서 책임 있는 행동을 하도록 하는 성인식이었다.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하승현)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