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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 포럼-정원석]조물주 위에 건물주, 홍대앞 떠나는 예술가들
홍대에선 큰 공연장, 작은 카페 등을 망라해 많게는 하룻밤에 50여 곳 이상의 공간에서 다종다양한 장르의 음악공연이 펼쳐진다. 가히 대한민국 라이브음악의 성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금 속을 들여다보면 겉보기와 달리 이 동네 음악공간의 상황이 그다지 여의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작년에 라이브클럽 2곳 이상이 문을 닫았다. 올해는 더 많은 숫자의 클럽이 문을 닫았거나 닫을 예정이거나 홍대를 떠나 먼 곳으로 이전할 예정이다. 클럽마다 각기 사정이 다르고 이유도 복합적이지만 가장 큰 요인이자 공통 요인은 치솟는 임대료다. 남아있는 클럽들도 적자를 감수하면서 고군분투하는 곳이 많다. 돈과 열정을 쏟아 부은 공간을 놀리는 것 보다는 한 명의 음악팬이라도 받는 것이 고정비용인 임대료를 상쇄하기 때문이다.

홍대가 대한민국의 대표 문화예술지구로 부상한 것은 90년대 초중반부터다. 이전부터 예술가의 동네였지만 상대적으로 한적했던 홍대는 언론의 주목과 함께 밀려드는 유동인구로 ‘돈이 되는’ 동네가 되었다. 소박한 동네에서 소박한 건물을 지니고 젊은 예술가들에게 공간을 대여해주던 건물주들은 자신들과 함께 하던 젊은이들이 벌여놓은 판에 사람들과 돈이 모여드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시작된 것이다.

2002 한ㆍ일월드컵 이후 10여 년간 홍대는 대한민국 그 어느 곳보다 성장한 대표 상업유흥지역이 되었고, 그 반대급부로 예술가들은 점점 밖으로 밀려나왔다. 예전에는 홍대 앞으로 불리지 않았던 상수동, 합정동, 연남동, 망원동까지 홍대 앞으로 불리는 이유도 밀려나온 예술가 덕분(?)이다.

홍대 앞 건물주들은 예술가들의 덕을 보고 돈을 벌었지만 이제는 그들의 등을 떠밀고 있다. 공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임대료는 오르고 당연히 건물주들은 높은 임대료를 제시하는 측을 새 임차인으로 맞는다.

예술가들의 작업실, 뮤지션들의 연습실, 라이브클럽 등이었던 공간이 술집, 밥집 등으로 바뀌었고 다시 대자본의 패션브랜드, 대형 커피전문점 등으로 바뀌었다. 홍대는 다른 어떤 지역과도 차별화되는 젊은 문화공간이었지만 이제는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브랜드, 프랜차이즈 상점, 중국 일본 관광객들의 쇼핑타운으로 변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개인의 욕망을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푸념처럼 갈 곳이 점점 없어지는 라이브클럽 주인들은 이제 떠날 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한다. 라이브클럽은 대중음악의 건강을 책임지는 기초체력의 장이다. 이 곳에서 실력을 갈고 닦아 더 큰 무대로 진출하고 스타가 된다. 피라미드의 밑변이 부실하면 무너지게 돼있다. 라이브클럽이 없어지는 건 홍대 문화만의 고유성, 차별성이 없어지는 것이다.

최근 발표된 ‘홍대-합정-한강을 잇는 관광벨트’ 조성계획은 임대료 상승을 더욱 부추겨 예술가들을 더욱 궁지로 몰아갈 가능성이 크다. 음악업계 관계자로서 마음이 편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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