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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정재욱]총리 대신 부통령 어떤지…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새 국무총리 후보에 지명됐다. 이완구 전 총리 사표가 수리된지 얼추 한 달만이다. 하지만 인사청문회와 국회 인준 절차가 남아있어 취임까지는 시간이 더 걸린다. 총리서리제가 없어진 이후 최장 총리 공백이 50일(이명박정부 당시 정운찬 총리가 퇴임과 김황식 총리가 취임까지)이다. 이 기록이 깨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데 총리 자리가 그렇게 오래 비었는데도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어졌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대통령을 대신해 국무회의를 주재하거나, 크고 작은 행사 참석 등 총리가 있어야 할 자리는 다음 서열인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메웠다는 소리만 간간히 들릴 뿐이다. 국민들도 총리 공백을 그리 걱정하는 눈치는 아닌 듯하다. 그렇다면 일인지상 만인지하(一人之上 萬人之下)라는 총리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란 것 아닌가.

하긴 지금의 제도와 관행 아래선 누가 총리가 돼도 존재감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헌법상 총리는 국무위원 임명제청권과 해임건의권을 가진다. 얼핏 상당한 권한처럼 보이지만 실제 행사는 불가능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용납하지 않는다.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유력 후보자가 꼭 강조하는 게 이른바 ‘책임총리론’이다. 총리의 권한과 책임을 강화해 실질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대통령은 단 한명도 없었다고 한다. 대형 사건 사고가 터지면 총리가 그 책임을 지고 물러나니 ‘책임 총리’가 허언(虛言)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실권없는 ‘장식용 총리’, ‘대독 총리’의 불합리성을 꼬집는 말이다. 실제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 등으로 대통령이 어려운 상황에 몰리면 총리는 국면 전환을 위한 ‘희생양’이 돼야 했다. 총리 자리는 성난 민심을 무마하는 일회용 카드에 불과했던 것이다.

게다가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 넘기도 예삿일이 아니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총리 인선은 ‘잔혹사’를 넘어 ‘트라우마’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청문회 턱이 높았다. 황 후보자 이전까지 5명의 후보자를 냈으나 3명은 총리 자리에 오르지도 못하고 낙마했으니 그럴만도 하다. 결국 이 전 총리 사퇴에서 황 후보자 지명까지 한달이나 걸린 것도 청문회를 의식했기 때문이다. 이만하면 됐다 싶어도 십중팔구 청문회 벽에 막힐 판이니 시간이 마냥 늘어진 것이다.

총리는 조선시대로 치면 영의정이다. 한 집안에서 영의정이 나오면 대대손손 ‘가문의 영광’으로 여기며 그 긍지와 자부심이 대단했다. 세상이 달라졌다지만 지금의 총리 위상과는 천양지차다. 가문의 영광은 고사하고 자칫 ‘가문의 망신’만 톡톡히 당하기 일쑤인데 누가 선뜻 하겠다고 나서겠는가. 툭하면 총리 무용론이 나오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차제에 총리직을 없애고 부통령제를 도입하는 건 어떨까. 적어도 총리 고르느라 끙끙대는 수고와 이로 인한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는 없지 않겠는가. 중간에 갈아 치울 일도 없으니 안정적 국정운영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헌법을 고쳐야 하는 일이나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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